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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법은 멀고, 관심은 더 멀다

입력
2010.07.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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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15일 저녁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성 산업 착취구조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주최측이 펼친 현수막의 글귀다. 7ㆍ8ㆍ10ㆍ11일 잇따라 자살한 술집 여종업원 네 명의 넋을 달래는 자리였다.

주최측인 지역 여성단체의 뜻은 갸륵하지만 20ㆍ30대 여성 네 명의 죽음의 이유를 ‘성 산업’ 특유의 착취구조에서 찾은 것은 아쉽다. ‘술집 여종업원’이라는 직업영역의 표시만으로도 이들의 죽음은 사회적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일상적 성매매를 연상시키는‘성 산업’까지 덧붙으면 사회적 관심이 좀처럼 미치기 어려운 완전한 특수영역에 놓이고 만다. 그에 따라 고리사채의 보편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흐려질 수 있다.

포항 연쇄자살 사건에서 가장 먼저 목숨을 끊은 이(32)씨는 처음 300만원의 고리채가 돌려막기를 통해 1억 원으로 늘어난 데다 자신이 보증을 선 여성이 달아나는 바람에 그 빚까지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이 보증을 선 김(36)씨의 자살을 불렀고, 다시 두 명의 여성이 죽음의 연쇄에 휘말렸다.

고리사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밖에서 보면 한없이 평화로웠던 농촌공동체에도 먼 옛날부터 장리(長利)라는 게 있었다. 춘궁기에 쌀 한 말을 빌리면 가을에 추수가 끝난 후 한 말 반 이상으로 갚았다. 요즘의 금리로 환산하면 연 100% 가까운 고리다. 전통사회가 붕괴된 후 이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으면 충분히 사라지거나 희석됐을 만한 아름답지 못한 전통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고금리를 겪은 탓인지, 고금리에 대한 사회 저변의 거부감은 유난히 약하다. 이자를 받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겼던 중세 교회법 전통의 결여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원인이 무엇이든, 고리채 문제는 날로 심각성을 더하는 현실의 문제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나마 제도권 안의 캐피털 금리를 문제 삼았을까.

다양한 제도적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1월부터 본격지원에 나선 미소금융의 대출 실적은 122억 원에 불과하다. 미소재단 유지 비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심하지만, 애초 ‘10년ㆍ2조원’인 사업규모 자체가 미미하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햇살론이 기대를 모으지만, 이 또한 규모가 ‘5년ㆍ10조원’에 그친다. 반면 제도권 금융 밖의 고리사채는 이미 2008년 말 기준으로 16조5,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온 대부업체의 대출이 약 6조원이니, 나머지 10조원 이상은 법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악성 사채인 셈이다.

이자제한법이 정한 연 30% 상한을 넘는 고리대금은 갚지 않아도 그만이다. 또 채권추심법은 빚을 받아내려고 채무자나 그 가족, 친지 등에 대한 폭행ㆍ협박ㆍ체포ㆍ감금 행위나 위계ㆍ위력 행사에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과하도록 했다. 야간 방문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법을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 악성 사채를 쓰는 예는 극히 드물다. 고리대금과 불법추심에 시달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법은 예나 지금이나 멀기만 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나올 때마다 으레 “시장 밖 문제에 시장제도를 들이대는 것”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그러니‘시장 밖’이 아니라 아예 ‘사회의 밖’에 있어 일반인들이 언급하기조차 꺼리는, 가령 유흥가에 널리 퍼져있는 고리사채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채무자들에게는 눈앞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게 급선무다. 그들이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 우선 목숨은 구해야‘밝은 세상’으로 나설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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