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며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北京)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도가 없는 나라는 없다. 즉 수도(首都)는 그 나라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으로 통치권자가 있는 곳이다. 고대에는 왕이 있는 곳을 도성(都城)이라 했고 왕성(王城)이라고도 했는데 오늘날의 수도이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평정하고 통일신라를 이룬 후 잘 나가다 망할 무렵에는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가 나라를 분할하여 다스리게 되었는데 이것을 두고 후삼국이라 한다. 이 가운데 898년 지금의 개성인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궁예(弓裔)다. 그가 905년 도읍을 철원으로 옮겨 918년 왕건에게 왕권이 넘어갈 때까지 임금으로 있었던 후고구려의 도성이 바로 궁예도성이다.
궁예는 911년에는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으로 고치기도 했지만 도읍을 옮긴 지 13년간 철원은 왕도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 남과 북의 휴전선인 군사분계선을 가운데 두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내 비무장지역에 서로 반반씩 나누고 있는 위치에 궁예도성이 있었다. 지금은 강원 철원읍 중강리, 홍원리, 월정리, 가칠리 일원의 풍천원(楓川原) 평지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궁예도성은 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함경북도 원산까지 경원선을 설치할 때 도성의 남벽과 북벽의 일부로 철길이 지나가면서 파괴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궁예도성은 네모 형태의 성벽 속에 왕궁터, 절터, 석등과 석탑 등을 갖춘 것으로 조사되었다. 규모를 보면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 성으로 내성의 둘레 7.7km, 외성 둘레 12.7km에 성벽 폭 11m, 높이는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4m로 조사되었다. 이것은 광복되기 전인 1942년 일제강점기 때 조사된 내용이다.
그 후 광복되었으나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공교롭게도 이 궁예도성이 비무장지대에 들어있게 되었다. 광복 65주년이 지난 지금도 비무장지대에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유적조사가 진행되면서 가장 최근에 와서야 몇 차례 간단히 먼발치에서 보는 정도의 확인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정밀한 조사는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조사될 당시 남아있었던 도성 내외의 석탑이나 석등 등의 문화유산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궁예가 도성을 건설하고 망한 후 왕건이 송악 즉 개성에 도읍을 정해 자연히 도성의 기능은 잃고 지금까지 1,1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
문화유산은 이념의 산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무장지대에 남아있는 궁예도성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조사해 문화재를 찾아내고 당시의 문화를 밝혀나간다면 우선 학문적인 면에서 공동 목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장을 공개하면서 발굴하게 되면 세계인들의 관광명소도 될 것이다. 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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