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귀신들은 저승 가서도 인간사에 미주알고주알 관심이 많다. 아직 못다 푼 한을 해소하려는 방식이기도, 미욱한 후손들을 꾸짖는 나름의 짓거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귀신들은 그래서 ‘참여적’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지옥 끝까지 가서도 싸워대는 서양 귀신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이유다.
공포를 규격 상품으로 재단해 내는 할리우드의 B급 상상력에 넌더리 치면서 또 기웃대는 여름 극장가의 풍경은 얼마나 무반성적인가. 이 때, 우리 시대의 한국적 귀신을 깔끔하게 그려낸 극단 여름사냥의 ‘도시 괴담’은 갑갑한 도시의 빗줄기 같다.
‘오광귀신’ ‘눈 먼 도시’ ‘낙장불입’ 등 ‘2010 삼색 공포’라는 제하에 이어지는 세 단편에는 낯익은 원귀들이 동시대라는 옷을 걸치고 있다. 지난 2006년 ‘엠 에볼’로 국내 최초의 공포연극 전문 프로젝트 극단의 탄생을 알린 이들은 매년 여름이면 공포연극을 꾸준히 올려 와, 이번이 6회째다. 막전부터 관록이 느껴진다. “조문객으로 오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상갓집이니 핸드폰은 꺼주세요.”
완벽한 암흑 속,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한국적 공포 판타지가 펼쳐진다. 갑자기 핀 조명이 내려 꽂히면 원귀가 바로 그 곳에 서 있다. 잘린 목이 밧줄에 늘어뜨려져 있는 것도 그 지점을 정확히 조준한 핀 조명 덕에 알 수 있다. 맨 마지막, 일반 무대로 치면 커튼 콜 역시 암흑과의 싸움이다. 퇴장했나 싶었던 출연진이 깜깜함 속에서 순간적으로 진용을 갖추면, 바로 그 위를 핀 조명이 강한 빛을 비추는 식이다. 객석은 무슨 마술에라도 홀린 것 같다.
최대의 공신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물려 들어가는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여기에다 스텝진의 긴밀한 호흡이 합쳐진 무대 메커니즘으로 객석의 의식은 장악된다. 스피커의 귀곡성이 절정으로 치닫고 관 뚜껑이 열리는 순간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터진다거나,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소품이 순식간에 교체되는 등 ‘귀신 곡할 정도로’ 맞물려 가는 무대 운용 덕에 코 앞의 현실이 가상을 비웃을 정도다.
“캐나다 서커스단인 태양의서커스가 서커스를 예술화시켰듯, 이 무대를 공포 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작ㆍ연출자 김재환씨는 “하드 고어 무비가 주는 불쾌감을 없애고, ‘공포의 선(善)효과’를 실증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번 무대는 연쇄 자살 등 죽음이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하다. 8월 29일까지 바다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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