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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핵 비확산 체제의 복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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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핵 비확산 체제의 복병들

입력
2010.07.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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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핵(核) 질서’가 갈수록 복잡하고 위태로워지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및 핵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 등이 떠받치고 있는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 균열과 예외가 생겨나고 있어서 그렇다. 아직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최근 가장 심각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중국의 행태다. 중국이 지난 2월 파키스탄에 민수용 원자로 2기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이후 발톱을 드러낸 ‘비밀주의’와 ‘일방적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다.

중국은 6월말 열린 핵공급국그룹(Nuclear Suppliers GroupㆍNSG) 20차 총회에서도 NPT 비가입국인 파키스탄과의 ‘핵 거래’에 대해 세부 내용을 함구했다. NSG 회원국이 NPT체제 밖에 있는 나라에 핵 시설 등을 수출하려 할 때에는 NSG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A.Q. 칸 박사에 의한 핵 기술의 국외 밀거래’라는 위험천만한 과거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국은 2004년 NSG 가입을 이유로 그 이전인 1980년대 이뤄진 합의에 따른 파키스탄과의 이번 거래에 대해선 NSG 규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미국은 이에 강경한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미국 스스로 나쁜 선례를 남긴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시절 역시 NPT 비가입국이면서 사실상 핵무기를 갖고 있고, 더군다나 파키스탄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인도와 원자력협력 협정을 맺었다. 위선적 이중잣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인도가 비확산 체제에 도전하는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며 국제사회를 설득, 가까스로 NSG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법까지 뜯어고치며 인도와의 거래를 성사시킨 미국의 국익 중심주의적 행동은 비확산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무대를 중동으로 옮기면 상황은 한층 난해하다. 핵 에너지에 주목, 최근 원자로 건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서도 중동 핵 문제의 폭발성은 충분히 감지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중동 국가들의 핵 활동 계획엔 항상 군사적 전용 위험성이 깔려 있다. 친미 국가인 사우디가 원자로 건설을 추구하면서도 미국의 비확산 요구조건에 쉽게 응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디는 서방 국가들과의 핵협력이 여의치 않을 땐 파키스탄에 손을 내밀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사우디가 이미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에 비밀리에 자금을 대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파키스탄 배후에 있는 중국의 영향권내에 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자로를 수출하게 된 우리도 중동 핵 문제에 선이 닿아 있다. UAE에서의 우리의 개가는 사전에 UAE가 미국이 내건 비확산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이 이른바 중동에서의 ‘UAE 모델’이다. 미국은 핵 도미노를 막기 위해 요르단 등 핵 이용에 관심이 있는 여타 중동 국가들과의 막후 협의에서 ‘UAE 모델’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종합할 때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주장 등 핵연료주기 완성론이나 핵 주권론 등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우리가 나아갈 길도 아니라는 것이다.

고태성 국제부장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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