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스타는 전국구 스타 나아가 국민 스타가 되는 지름길이자 관문이다.
세계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올림픽 전승 우승을 일궜던 2008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멤버만 보더라도 전체 24명 가운데 7명이 봉황대기 개인상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또 상은 받지 못했더라도 봉황대기를 통해 훗날을 기약한 경우까지 더하면 한 명도 예외 없이 초록 봉황과 인연을 맺었다.
대회 초창기에는 경북고의 남우식 이선희, 대구상고 장효조, 충암고 조범현, 광주상고(현 동성고) 윤여국, 선린상고의 박노준 김건우 등이 봉황대기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박노준과 김건우는 고교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오빠부대’까지 거느렸다.
‘메이저리그 개척자’ 박찬호(뉴욕 양키스)는 1학년이던 제19회 대회에서 휘문고 박정혁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는 수모를 당했지만, 3학년이던 91년 대회에서는 광주일고를 상대로 2피안타 완봉승을 장식했다.
고교야구가 사양길에 접어든 90년대에도 봉황대기만은 스타 산실로 제 역할을 다했다. 국가대표 단골 중심타자 김동주(두산)는 배명고 2학년이던 92년 대회 때 최우수투수에 오르며 팀을 정상으로 안내했다. 김동주는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요미우리 이승엽은 큰 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봉황대기를 통해 ‘국민타자’를 예약했다. 경북고 시절 에이스이자 중심타자였던 이승엽은 93년 제23회 대회에서 부산고 주형광(롯데 코치)에게 홈런을 맞은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하지만 프로에서 이승엽은 타자, 주형광은 투수로 변신해 둘의 입장은 정반대가 됐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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