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 위에 버린 물건들이 쌓였다. 한때 300여 가구로 왁자지껄하던 동네에 주택 재개발 정비를 위한 철거가 시작 된 지 3년. 용역직원에게 두드려 맞고 집 헐려 쫓겨나고 쫓기듯 이사하고…. 도망 갈 형편도 안 되는 30가구만 동네에 남았다. 주민들은 무너지거나 빈 채로 남은 270여 채의 집 사이에서 지붕 날아갈 걱정에 선잠 자며 겨우 버텼다. 곧 헐릴 거라 여겨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매정한 인심에 억장이 무너졌다.
24일 오후 이 암울한 마을에 현수막이 걸렸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의 좁은 동네 골목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향기도 들어찼다. 1318행복찾기지원센터가 준비한 '도심 속 마을 꾸미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소년 160명이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기 때문이다. 양팔을 걷어붙인 대학생들은 마을 오르막길에 우거진 잡초를 뽑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낮 기온은 29.5도. 마을 입구에 쌓인 쓰레기더미의 역한 냄새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아이고, 더워서 이걸 어쩐데. 세상에, 천사들이 따로 없네. 대접할게 없어서 어떻게 한데." 고맙고 미안한 주민들은 척척하게 땀이 밴 학생들의 등줄기를 쫓아다니며 부채질을 했다. 잡초 뽑기, 청소 등은 대부분 60, 70대인 주민들이 "절실하지만 포기하고 살던 일"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불행은 2006년 시작됐다. 이 일대 대부분의 토지를 갖고 있던 소유주가 땅 일부를 건설회사에 팔았다. 소유주가 무허가로 지은 집에 400만~500만원의 전세를 주고 살았던 주민들은 용역업체를 고용한 건설회사의 퇴거 압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예고 없이 새벽부터 새까맣게 몰려오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언과 폭행에 지모(74) 할머니는 아직도 몸서리를 쳤다. "말도 마. 우리 앞집은 50대 엄마가 고혈압으로 누워있는데 의자 하나 바깥에 꺼내 그 여잘 앉혀놓곤 집을 헐었지. 딸도 정신지체3급이었는데. 지금은 어디 가서 뭘 하는지…."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2007년 재개발 사업이 틀어지면서 그나마 진행되던 보상논의조차 중단됐다. 집은 벽이 허물어 진 채로 방치됐다. 시청도 구청도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대책은 둘째치고 너무 살기 괴로우니 방역작업이라도 해달라는 민원만 수십 번. 올해 7개월간 두 차례 소독작업을 한 게 전부였다.
금이 간 벽과 바람 불면 없어지는 합판 지붕이 겨우 집 구실을 할 뿐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윤모(52)씨는 "나갔다 오면 집이 무너져 있을까 봐 바깥일도 제대로 볼 수 없다. 폐가인 줄 알고 주변에서 내다버리는 쓰레기 악취에, 쥐는 극성이라 섬뜩하다"고 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돕고 싶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현수막을 만들어달라고 했을까.
이날 하루 마을을 조금이나마 사람 사는 곳답게 바꿔보려는 학생들의 노력은 다양하게 이뤄졌다. 흉물스럽게 틈새가 벌어진 벽 위엔 '행복한 상도4동'을 그려 넣은 모자이크 그림을 붙였다. 무너져 내린 집 앞엔 길게 끈을 연결해 모든 학생들의 손바닥 도장을 걸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도장 개수만큼 주민들의 지원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눈을 감고 조금만 참아주세요, 눈을 뜨면 힘들었던 날의 두 배로 행복이 찾아올 거에요'라는 응원 메시지도 담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김혜진(17ㆍ동구여상1)양은 "서울은 고층빌딩이 가득한 도시인데, 폐가처럼 망가진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 계신 것을 직접보고 너무 놀랐다, 정부가 나서서 상황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사이 마을 입구엔 미술 디자인 등을 전공한 학생들의 벽화가 완성됐다.
해가 지고 학생들과 주민들의 작별인사는 길었다. 벽화의 페인트가 조금씩 말라갈 무렵 김모(81) 할아버지의 집에는 다시 모기떼가 기승을 부렸다. "열대야라는데 요놈들 때문에 긴 바지를 입고, 양말도 신어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어."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