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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다시 읽기’ 낸 정길수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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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다시 읽기’ 낸 정길수 조선대 교수

입력
2010.07.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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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이 일부다처제를 정당화한 시대착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잠시 유보하고 중세 동아시아에서 상상할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요즘 독자들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소설연구자이자 소장 한문학자인 정길수(40) 조선대 한문학과 교수가 서포 김만중(1637~1692)의‘구운몽’연구를 집대성한 (돌베개 발행)를 냈다. 정 교수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했던 논문들을 엮은 것으로 ‘구운몽’의 구조, 인물, 창작원리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한문본과 한글본 가운데 어느 것이 작품의 원본인가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을 정리했다. 판본 검토나 주제 연구 등에 집중됐던 지금까지의 ‘구운몽’ 연구와 달리 ‘예술성’을 기준으로 텍스트 내적 연구에 천착한 점이 도드라진다.

그가 ‘구운몽’전편을 처음으로 완독한 것은 박사과정(서울대 국문과)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 “고전소설치고는 훌륭한 작품이겠지” 정도였던 당초의 생각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 교수는 읽으면 읽을수록 치밀한 구성, 인물의 개성적 형상화, 메시지의 깊이 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그 감동의 여운 때문인지 그는 ‘구운몽’을 중심으로 17세기 장편소설의 형성과정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됐다.

정 교수는 “‘구운몽’은 한 남성의 여성편력이 소재라는 점에서 남성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남성본위의 소설로 느껴지지만 독자층은 남녀노소를 아울렀다. 그 이유를 밝히고자 10년간 이 소설과 씨름했다”고 연구의 동기를 소개했다.

그는 이 소설을 여성 본위의 소설로 분석하는데 그 분석의 과정이 정치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는 작중 여성들이 합심해 주인공인 양소유를 속이고 골탕먹이는 장면이 반복된다. 가령 양소유의 첫째 부인인 정경패는 자신의 몸종인 가춘운이 양소유와 맺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춘운을 선녀로 가장시켜 양소유에게 접근하도록 하고, 일곱 번째 부인인 심요연은 자객을 가장해 비수를 품고 양소유의 침소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본심을 고백하고 인연을 맺는다.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양소유를 속이고 조롱해 독자들의 웃음을 유도하고, 결국에는 양소유와의 결연이라는 목표를 관철해내는 과정은‘구운몽’이 많은 여성독자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 이 밖에도 작중여성들이 신분차를 극복하고 공존을 이루는 과정에서 평등지향적 사고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상층계급 여인들의 배려로 이뤄진다는 한계 역시 간파함으로써 ‘구운몽’의 주 독자층을 사대부가의 여성이라고 파악하거나, 한문본 ‘구운몽’ 이 기존 소설들과 달리 전면적인 우리말 어순을 채택하거나 통속적인 문체를 시도한 점을 들어 전면적인 ‘문체실험’을 시도한 소설로 규정한 시각도 흥미롭다.

‘구운몽’을 당대(17세기) 동아시아의 대표적 여성편력소설인 중국의 ‘육포단(肉蒲團)’과 일본의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과 비교한 점도 신선하다. 정 교수에 따르면‘육포단’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원천이 성적 능력이고 ‘호색일대남’에서는 돈이다. 그러나 ‘구운몽’에서 주인공은 문예를 통한 사대부적 교양으로 여성들을 유혹한다. 성애 묘사도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수위가 낮다. 중세의 엄격한 규범으로 보면 ‘구운몽’은 속(俗)의 세계에 놓이겠지만, 다른 두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아(雅)의 세계에 다가서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구운몽’은 중세적인 유가적 법도의 테두리를 아슬아슬 벗어나지 않으며 욕망을 좇고 종착점에 이르러서는 불교 혹은 노장의 세계를 받아들여 ‘욕망은 헛된 것이다. 혹은 ‘욕망이 헛된 것이라는 생각도 헛된 것이다’라는 알듯 모를듯한 오묘한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입니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며 대학에 입학, 서구 이론서를 주로 읽다가 김태준(1905~1949)의 를 읽고 난 뒤 고전소설 연구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정 교수는 “동아시아 세 나라의 17~19세기 소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이 시기 세 나라 대표작에 대한 비교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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