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혀 있었다, 다섯 시 반
저녁이 다가오는데도 유월 볕은 환했다
양양, 볕볕, 볕이 많은 오산리에서
선사시대 얼굴, 흙으로 빚은 얼굴이 발견되었다는데
닫힌 박물관 앞 너른 갈대 습지만 들여다보았다
습기의, 물기의 발원을 오래 생각했다
경포호처럼 바닷물과 민물이 만났을 것이고
물기를 따라 사람들이 흘러와 살았을 것이고 그때도
오월이면 물꼬기 꼬리에서 아카시아 향이 났을까
누군가 빼앗긴 애인을 되찾기 위해
신문지에 비수를 싸들고 가 구들장에 꽂았다는
내력이, 마음의 낭자한 지도를 따라
습지에서 흘러내려왔다면
짐승처럼 수렵만 한 게 아니라면
잉크빛을 토해내듯 짙은 그늘이
분명 흙으로 빚은 이마에도 스며들어 있을 텐데
그늘은 유물이 되어 안쪽에 보관되어 있다
문이 닫혀 있다면, 다섯 시 반이라면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내일 누군가 잉크빛 그늘에 새겨진 물기를
햇볕 아래서 오래 생각하게 될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문을 열었을 때 서둘러 찾아간 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서였죠. 전시실에는 반가사유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하나뿐, 실내는 어두웠지요. 유리상자 속 반가사유상을 보는데 여기저기 얼굴이 불쑥불쑥. 조명을 받은 관람객의 얼굴들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수천 년 동안 어둠 속에 머물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얼굴들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시실을 나와 식당에서 빵을 먹었습니다. 천년은커녕 1분 뒤면 감쪽같이 사라질 맛이랄까. 그런데도, 아니 그렇기에 오랜만에 제대로 맛본 빵 맛이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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