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의 배신·민간인 사망 축소… 까발려진 아프간戰 실체
"미국이 3,000억달러(357조원)의 자금을 쏟아 넣었는데도,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미군의 침공 이전인) 2001년보다 더 강해지고 있는 원인을 보여준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5일 공개한 9만1,731건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군 기밀문건을 분석한 미 뉴욕타임스(NYT)의 진단이다. 9년째인 아프간 전쟁의 모습을 '현장 그대로의(ground-level)' 모습으로 보여주는 이 문건들은 암울하기 그지 없다.
아프간 민간인 사망 얼마나 숨겼나
2009년 9월 3일 기밀문서는 다수의 무장세력이 트럭 2대를 훔쳤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밤 중에 이들을 쫓던 미군은 트럭을 발견하고 70여명의 무장세력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보고는 발포 명령이 내려져 대대적 폭격으로 56명의 무장세력이 사망하고, 14명이 도망갔다고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민간인이었고 도난 당한 트럭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NYT는 미군이 민간인 트럭을 도난트럭으로 단정한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2008년 8월에도 92명, 지난해 5월엔 147명의 민간인이 공습으로 사망했다. 가디언의 문건분석에 따르면 연합군이 발표하지 않은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95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어린이, 여성들도 다수였다. 기밀보고서들이 워낙 방대해 감춰진 민간인 사망자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등은 외신마다 차이가 있다. 유엔 자료는 지난해 2,412명의 민간인 사망자 중 70%는 탈레반에 의한 것이고, 아프간군과 연합군에 의한 사망은 595명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비밀특수부대 '태스크포스 373'
탈레반 요인 체포와 암살 임무를 띠고 있는 미국의 비밀 특수부대 '태스크 포스 373'의 존재도 새로 드러났다. 아프간 카불, 칸다하르주, 코스트주 등에 최소 3개 기지를 두고 있다. 주로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에 있는 특전 부대 요원들로 육군과 해군이 혼합돼 있다. 이들은 2,000명 이상의 탈레반 및 알카에다 요원의 신상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작전을 펼친다.
이러한 작전 과정에서도 민간인 희생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6월11일 탈레반 사령관 칼 우르 라만을 쫓는 과정에선 아프간 경찰 7명이 오인 사살됐다. 리비아 테러리스트 아부 라이스 알 리비 추적 중에도 무고한 어린이 7명이 희생됐다.
파키스탄, 이란의 탈레반 지원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탈레반과 깊숙이 연계돼 있다는 의혹도 기밀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ISI 관계자들이 2006년 탈레반 회의에 참여, 파키스탄 접경 칸다하르의 마루프를 공격할 것을 지시한 정황이 공개된 것. ISI 부장이었던 하미드 굴 장군은 지난해 1월 남 와지리스탄의 주도인 와나에서 알 카에다 관계자로 추정되는 아랍인사 3명과 아프간 반군 사령관들을 만나 작전 계획을 모의했다.
또 기밀문서에는 이란이 친미정권인 아프간 카르자이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탈레반의 무기, 금융, 훈련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미군이 준 '열추적 미사일'사용하는 탈레반
2007년 3월 문건에는 탈레반이 지대공 열추적 미사일로 연합군 헬리콥터를 격추, 미군 5명, 영국군과 캐나다군 각 1명씩이 사망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대변인은 재래식 무기로 공격 당한 것처럼 언론에 거짓말을 했다.
이는 미국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연계돼 있기도 하다. 이‘스팅어’ 미사일은 미군이 소련군을 아프간에서 몰아내기 위해 탈레반의 전신이었던 무자헤딘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위기리크스란 '미군 위협 사이트로 지정된 내부고발 전문 매체'
미군 헬기의 이라크 민간인 공격 동영상 폭로에 이어 25일 아프간전의 비밀 문건을 공개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위키리크스’는 2006년 12월 호주 저널리스트 줄리언 어산지(39)가 수십개국 자발적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설립한 내부고발 전문 인터넷 언론매체다.
위키리크스는 창설 이후 영 극우파 소수정당 인사들의 개인정보나 미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의 이메일, 아프리카 연안 유독물질 투기 관련 메모 등을 공개해 기존 언론이 미쳐 다루지 못했던 ‘폭로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줬다. 더욱이 위키리크스가 주로 미 정부의 민감한 내부 정보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한 때 미 정보기관들로부터 ‘미군에 위협이 되는 사이트’로 지정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는 어산지가 대표라는 사실 외에는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매우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12명의 핵심 자원봉사자들이 스웨덴 덴마크 등에 서버를 둔 사이트를 운영하며, 제보자들의 철저한 익명성 보호를 위한 1,000여명의 기술 지원단 및 소송을 대비한 법률 지원단이 외곽에서 위키리크스를 지탱하고 있다.
일각에선 위키리크스의 보도들이 ‘일방적인 폭로’에 불과하단 지적도 있지만 대체로 탐사저널리즘의 모범을 보이는 대안언론으로 평가 받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6일자에서 “위키리크스는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소규모 비영리 웹사이트 언론이 얼마나 힘을 갖게 됐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편, 어산지 대표는 25일 영국 TV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전 기밀 공개 보도는 9년 동안 이어져온 전쟁의 모든 비밀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정의를 위해선 정부의 투명성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뒤통수를 쳤지만 버릴 수는 없고…美, 파키스탄에 퍼주기 '망고외교'
“개인적으로 아주 맛있는 파키스탄 망고를 샀다. 수개월 안에 미국인들도 이 망고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난주 아시아 4개국 순방길에 오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파키스탄에 껄끄러운 부탁을 하기 위해 당근으로 ‘망고’를 제시했다. 아프간 전쟁을 치르는 데 가장 중요한 파트너 파키스탄의 눈치를 보고 있는 미국은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해 5억달러 규모의 개발지원을 약속하는 등 각종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망고 수출을 돕겠다’는 당근이 반미(反美)가 팽배한 파키스탄 민심을 달래는 데 주효했다.
망고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남아시아가 중시하는 국가 과일로, 이들 국가의 외교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판매 허용을 조건으로 미국 망고 시장을 개방했고, 3년 만에 파키스탄산 망고 수입을 결정한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당근을 제시하면서 “테러 방지를 위해 파키스탄에 추가적인 조치를 기대한다”는 압박성 멘트로 쐐기를 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파키스탄 사람들은 무엇보다 망고에 집중했다. 현지 뉴스전문 채널 지오TV와 인터뷰한 평범한 파키스탄인들은 역시 ‘망고 외교’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데일리타임스 등 신문들도 양국의 신뢰 구축이 공고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즙을 자랑하는 망고가 이번에도 화해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한 것.
앙숙 사이인 인도와 파키스탄양국은 지난 1980년대 초반 파키스탄 대통령이던 지아 울 하크와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의 망고 맞교환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등 망고 외교의 역사는 오래됐다.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별난 ‘망고 외교’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양국의 망고 외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나라가 있다. 연간 1,300만톤을 내다파는 세계 최대 망고 수출국 인도다. 카슈미르 지방이나 물 분쟁을 놓고 시시때때로 파키스탄과 충돌하는 앙숙 인도는 연간 160만톤을 수출, 세계 5위를 차지하는 파키스탄의 망고 수출 시장이 커지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인도 신문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25일 ‘망고 외교’를 경계하며 파키스탄과 미국의 유착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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