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거시적으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정부는 그 원인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에서 찾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유례없는 실적을 내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하루하루 연명조차 힘든 실정이다. 실적이 좋은 대기업 관련자보다 중소기업 관련자 수가 훨씬 많으니 체감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기업간 양극화로 체감경기 실종
대기업은 경기가 어려울 때는 중소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경기가 호전될 때는 이익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6ㆍ2 지방선거 패배의 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보고, '정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태세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팔을 걷고 나서 실적이 좋은 대기업을 겨냥해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인식은 물론 옳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기업 간 양극화'다. 위기 후 일부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격상된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을 포함한 나머지 기업은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대기업이 격화된 경쟁 속에서 중소기업을 쥐어 짠 것도 한 몫 했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인 비정규직 문제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능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이 문제가 왜 이제 부각되는가. 세계적 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그 과실이 대기업에 집중되는 것을 보고서야 기업 간 양극화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굳이 이야기하자면 지금이 아니라 경기가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지 않은가.
요는 정부가 '장기적 개혁'의 문제를 '단기적 경기변동'의 맥락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 나아가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재벌 문제는 적어도 1980년대부터 있어 온 해묵은 과제다.
5공(共) 이후 현 정부 출범 전까지 모든 정부는 이 문제를 주요 개혁과제로 설정하고 정권 초기에 시행하려고 했다. 반면 현 정부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속에서 오히려 대기업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면과 재벌 규제 철폐를 먼저 시행했다. 그 근거는 대기업이 잘 돼야 중소기업도 잘 된다는 '적하(滴下ㆍtrickle-down) 효과'의 논리 아니었던가.
결국 정부는 이제야 그런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출범 후 2년 반이나 지나서, 지방선거에서 지고 난 뒤에야 깨달았기 때문에 너무 늦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민주정치 하에서 개혁은 정권 초기에 해야 성공한다지만, 대기업-중소기업 문제나 재벌 문제 같은 것은 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그 시행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야당의 입장에서 스스로 그런 주장을 줄곧 해 왔으니 반대할 명분이 없다. 정부는 야당의 의제를 '선점'하는 것이니, 대개 역사적으로 성공한 개혁 중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친서민 포퓰리즘' 한계 벗어야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기업-중소기업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서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벌 규제도 재검토해서 필요한 개혁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 옳다. 그러지 않고 일부 대기업에게 "실적이 좋아졌으니 이익을 나누라"는 식의 접근은 결국 한국적 풍토에서 너무 익숙한 관치(官治)의 논리에 포퓰리즘이 더해지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권력기구를 이용해 단기적 성과를 올리는 것보다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친서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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