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정부는 국내 최초로 물가연동국고채(물가채)를 발행했다. 물가채는 원금을 물가에 연동시켜 채권의 실질가치를 보장해주는 국채.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투자설명회(IR)까지 개최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참패였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고, 결국 1년 반도 견디지 못한 채 이듬 해 8월 발행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새로 출시된 물가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발행액은 예상을 크게 웃돌고, 증권사 창구에는 5억원, 10억원씩 물가채를 사겠다는 고액 자산가들이 줄을 잇는다. 2년 전 ‘미운 오리새끼’였던 물가채가 이제 ‘백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9~22일 10년 만기 물가채 입찰을 진행한 결과 모두 2,590억원 어치가 발행됐다. 재발행 첫 달인 6월 발행액(3,33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당초 예상했던 월 평균 발행액(1,500억원)을 크게 웃돈다. 발행금리가 지난 달 연 2.77%에서 이번 달엔 2.36%로 크게 떨어진 걸 감안하면 수요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발행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물가채 가격이 그만큼 상승했다는 얘기. 삼성증권 고영준 리테일채권팀 차장은 “지난 달 폭발적인 인기에 비하자면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채권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지난 달 발행됐던 물가채는 시중에서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가 된다. 현재 유통금리는 연 2.2% 안팎. 발행금리(2.77%)에 비해 0.5%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대우증권 손민형 채권영업부 차장은 “개인 고객들의 경우 보통 5억원, 10억원 단위로 물가채를 사들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천대받던 물가채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건 1차적으로 상품구조의 대대적 혁신 덕분이다. 우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서, 만기 시 물가채 원금이 액면가보다 낮아지는 경우 액면가만큼 보장하는 ‘원금 보장제’를 도입하면서 투자 심리를 안정시켰다. 발행물량을 먼저 확정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발행금리를 먼저 정한 뒤 나중에 물량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수급 불균형 우려를 해소했다. 그래서“정부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재발행 시기도 절묘했다.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 만약 소비자물가가 연 평균 2% 가량 상승한다고 할 때 현재 금리수준(일반 국채 5%, 물가채 2.75%)을 감안하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물가채 수익률이 더 높다.
여기에 개인이 물가채에 투자할 경우 세금 혜택도 덤으로 주어진다. 물가상승으로 늘어난 투자원금은 비과세 대상이기 때문. 손 차장은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만큼 원금이 불어나는 구조인데다 늘어난 원금에 대해서는 절세 효과도 누릴 수 있어 지금 같은 물가 상승기에 고액 자산가들에게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가채 성공에 잔뜩 고무된 모습이다. 유재훈 재정부 국고국장은 “국고채 발행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자금 조달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됐다”며 “국채수요 기반을 확대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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