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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과학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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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과학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을

입력
2010.07.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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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게 돈을 쓰는 방법이 각광 받고 있다. 생활 필수품과 커피를 소비하면서 지불한 돈이 농민과 생산자에게 다시 돌아가고 아프리카의 어린이들까지도 후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분 좋게 소비하는 방법이 생긴 것은 각박한 세상에 단비같은 일이다.

돈의 흐름을 보면 그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 사회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슈퍼는 죽었고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일반 서민들이 생활 필수품을 사면서 지불하는 돈까지 재벌 그룹들이 다 빨아들이는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돈의 블랙홀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이 잘되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이 흐르기만 한다면야 일 잘하는 대기업이 흥하는 게 나라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일 수도 있을 게다. 다만, 돈은 흘러야 한다.

돈이 있어야 연구를 할 수 있기에 학자들도 연구비 수여 기관과 사람들에게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자연과학도는 다행히 이윤 추구가 최대 목표인 사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연구비 수여기관인지라 정도 이상 자존심을 굽히지는 않아도 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비 확보 전략을 가다듬어야 하는 게 현실인지라 정권 특이적인 국가 경영 철학에 기반한 연구비 말고 학문 자체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으로 꾸준하게 지원하는 민간 연구비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나의 학비와 생활비 일체는 영국 암 연구재단이 지원해 주었다. 영국 최대의 기부 단체인 이 재단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방방곡곡에 사람들이 기부한 생활용품과 잡동사니를 파는 상점도 운영하고, 1년에 몇 차례 가가호호 방문하여 개인 기부를 독려하기도 한다. 수입 전액은 암 연구에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재단이 이와 유사한 모금 방법을 활용 하는 것 같다.

영국 암 연구재단은 수 없이 많은 의사 과학자들을 지원해왔다. 이 재단의 직접적 후원으로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도 많다.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너스 경과 헌트 경이 대표적인 예다. 재단은 임상 연구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응용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는 장기적 연구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돈을 지원한다. 감동스러운 점은 기부자들이 재단이 어떻게 돈을 쓸지를 알고 동참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이런 기부 재단이 몇 개 더 있다.

영국에 기부 문화가 싹튼 것은 칼 마르크스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산업 혁명 이후 부르주아에 의한 자본 독점이 가장 심했던 곳이 영국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런던에 머물며 대영 도서관에서 을 썼다고 하지 않던가. 돈을 빨아들이기만 하고 순환시키지 않으면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유혈 혁명으로 모든 걸 잃고 말 것이라고 겁을 먹고 수입 일부를 사회에 내놓은 것이 영국 기부(Charity) 문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민간이 후원하는 연구비는 정권의 이념이나 운영 철학의 지배를 받지 않으므로 가장 기초적인 연구에 장기간 투자할 수도 있고 이것은 훗날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큰 응용의 가치를 생산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매일 쓰는 돈이 국가 과학 발전의 초석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소비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착한 소비가 과학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이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좋은 방법인 듯하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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