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박근혜의 복지국가론' 시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박근혜의 복지국가론' 시비

입력
2010.07.25 12:05
0 0

진보 쪽 사람들은 '복지'가 그들만의 독점적인 의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수는 아예 복지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고 여긴다면, 턱없는 오만이거나 엄청난 착각이다. 역사적으로 복지를 국가 차원에서 선구적으로 도입한 나라들도 보수적인 경향 속에 있었다. 비스마르크 치하의 독일,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보수 대 진보 정책경쟁의 시작

박근혜의 복지국가론도 당연히 서민과 중산층의 표를 노리는 전략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최근 유럽적 복지를 입에 달고 다닌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 복지가 중요하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가의 모습일 것이다."

물론 여러 점에서 구체성이 없다. 또 박정희의 목표가 복지국가였다고만 말하는 것을 보면, 억지스럽다. 성장 시대에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희생과 상처가 컸다. 지도자가 되려면 과거의 상처를 인정한 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인정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어쨌든 박근혜는 복지국가를 전략으로 밀고 갈 듯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정책도 도입할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보수의 그런 전략을 그저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제까지는 개혁&진보 세력이 복지에 거의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저 '복지'에 대해 말하기만 해도 통했다.

이제 한나라당이 서민과 중간계급의 표를 얻기 위해 조금씩 복지정책에 접근하면, 개혁&진보는 더 나은 정책을 실현해야 하는 과제와 직면한다. 말하자면 '복지'가 처음으로 정치적 경쟁의 장에 들어선 것이다. 보수의 복지국가론은 한나라당에게만 필요한 약이 아니다. 개혁&진보에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의 복지국가론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진보의 실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보수의 복지는 기껏해야 선별적이거나 시혜적이기에, 진보만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이라고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복지를 추구하고 실현하지는 않았다. 복지국가 유형에는 스웨덴이 대표하는 사회민주주의 모델, 영국과 미국이 속한 자유주의 모델,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등이 속한 '보수주의' 모델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강한 나라지만, 복지국가 차원에서는 북구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다른 길을 갔다. 이 차이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국가와 가족, 그리고 조합과 교회가 큰 역할을 떠맡았고, 현재도 그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무슨 말인가? 북구 모델이 비교적 보편주의 복지로 갔고, 독일과 프랑스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의 복지가 북구보다 저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보편주의만이 복지를 위한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들의 정치적 동원 방식과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음! 북구 모델이 한국에게 유일한 목표일까? 더욱이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까? 개혁&진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 북구 모델이 어디선가 정답으로 주어진다. 교조적 진영 논리 탓이다. 복지국가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그 진영논리는 위험하다.

독일ㆍ프랑스 모델 잘 살펴보길

북구는 여러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무엇보다, 인구가 많은 스웨덴도 900만이 채 안 된다. 적은 인구가 주는 최대의 장점은? 군사비 지출은 최소화하고, 복지 지출은 최대화할 수 있다. 나는 여러 이유로 독일과 프랑스 모델이 한국에게 가까운 유형이라고 본다. 국가ㆍ가족ㆍ조합ㆍ교회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강력한 자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도 한국과 엇비슷하다. 그쪽으로 갈 수만 있어도, 사실 다행이다. 자유주의 복지제도가 어느 새 야금야금 뿌리를 뻗었기 때문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