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助力)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헌법(12조 4항)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변호인의 조력권은 진술 거부권과 함께 피의자, 피고인의 방어권을 구성하는 핵심 권리다. 이러한 헌법상 권리가 법률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 변호인 선임 의뢰권, 국선 변호인 선임권, 변호인과의 접견ㆍ교통권 등이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변호인 또는 변호인으로 선임하려는 자와의 접견을 통해 수사나 재판에 필요한 서류나 편지, 물건 등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요즘처럼 피고인의 자유로운 접견ㆍ교통권이 보장된 것은 20년도 채 안 된 일이다. 권위주의 시절,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은 조사 중인 피의자와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했다. 구치소는 미결수 접견 때 감시나 녹취가 금지돼 있는데도 버젓이 교도관을 입회시켜 대화 내용을 기록하게 했다. 접견 대상이 시국사범이면 더 심했다. 이러한 접견 제한 및 감시의 위법ㆍ위헌성은 1990년과 92년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확인됐다. 이후 수사상 필요에 의한 변호인 접견 제한이나 변호인의 미결수 접견 때 입회ㆍ감시 행위가 사라졌다.
▦그러나 변호인과의 접견ㆍ교통권은 왕왕 악용되기도 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미결수의 변호인 접견은 횟수에 제한이 없다. 또 필요할 경우 접견시간 연장, 접촉 차단 시설이 없는 장소에서의 접견이 가능하다. 대기업 회장, 권력층 인사, 조직폭력배 등 이른바 ‘범털’들의 변호인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범털들이 감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일 접견’을 한다. 변호인 접견이 마약이나 담배, 휴대폰 등 금지 물품의 반입이나 사건 관계인 협박, 사건 조작 지시 등을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된 사례도 많다.
▦법무부가 교도소 수용자의 뒷바라지를 하는 ‘집사 변호사’의 접견을 제한하자 변호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변호인의 가방이나 쇼핑백을 열어 보고 소지품 검사를 하는 내용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영장 없는 수색이나 마찬가지이며, 변호사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인격 모독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변론 활동의 상궤를 벗어난, 수형(受刑)의 의미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일탈 행위를 근절하려면 이 정도의 규제는 변호사들이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 그 전에 더 이상 ‘집사 변호사’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자정 결의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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