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좀 더 굴러보세요. 걷는다고 상상해보세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실에서 '신체 표현 워크숍'이 열렸다. 일본의 신체장애인 극단 타이헨이 내년 3월 한국에서 선보일 공연'황웅도 잠복기'의 한국 조연배우 오디션을 겸해 마련한 워크숍이다. 연출자의 주문에 맞춰 뇌병병, 지체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 워크숍 참가자들은 5m 폭의 교실 바닥에서 안간힘을 썼다. 몸을 일으키려다 자신의 체중에 압도되고, 굽은 팔다리 덕에 움츠린 몸을 굴려 바닥을 가로지르기도 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장애인 23명이 참가한 오디션은 1시간가량 계속됐다.
극단 타이헨은 신체장애인이 직접 공연을 구상하고 연출하며 연기도 하는 일본의 극단이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심한 지체장애를 갖게 된 재일교포인 김만리(56)씨가 1983년 직접 창단해 오사카(大阪)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신체장애인의 불안정함, 떨림, 단련되지 않은 움직임 등을 씨앗으로 독창적인 공연예술을 꽃 피워낸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존의 미의식, 인간관을 변화시켰다는 평도 있다.
내년에 선보일 '황웅도 잠복기'는 일본제국주의 시절 실존했던 황웅도라는 인물의 삶을 다룬다.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여러 번 투옥된 뒤 일본으로 몸을 피한 후 금지됐던 조선의 전통예술공연을 선보인 인물이다. 극단 타이헨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과 한국에서 '황웅도 잠복기'를 연속 공연을 하고 배우도 교류하기로 한 것이다.
오디션에 참가했던 뇌병변 1급의 장애경(42)씨는 "몸이 가벼워지는 즐거운 경험이었고, 맘껏 움직이고 나니 머리 아픈 게 나아졌다"고 했고, 하반신 장애를 가진 김동림(47)씨는 "안 쓰던 근육을 움직인 탓에 힘들었지만, 피가 나는 것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었다"고 말했다.
극단 타이헨 관계자는 "열정적인 참가자들이 무척 많아 인상적이었다. 조연배우로 선발되면 3월 한국공연에서 일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되는데 공연을 마친 후에도 서로 지속적인 교류를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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