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 약사 납치 살해 피의자 2명이 사건발생 7일 만에 붙잡혔다. 결정적인 단서는 범인들이 피해자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전표에 남긴 쪽지문(지문의 일부)이었다. 온전치도 않은 지문을 대조해 낼 수 있는 첨단수사기법이 범인 검거의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23일 낮 12시40분께 피의자 신모(28)씨와 이모(28)씨 등 2명을 서울 양천구 목동의 중국집에서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17일 새벽 약사 한모(48)씨를 한씨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납치해 성폭행한 후 살해하고 시신을 서해안고속도로 광명역 나들목 부근 배수로에 버린 혐의(납치ㆍ살인ㆍ시신유기)를 받고 있다.
검거 결정적 단서
경찰은 사건당일 폐쇄회로(CC)TV에 찍힌 피해자 차량의 동선에 주목했다. 17일 오전 1시54분께 차량은 경기 과천시의 한 주유소 CCTV에서 등장했고 주유소 직원을 통해 특이한 문신 등 범인의 인상착의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범인들은 CCTV에 모두 네 차례나 찍혔지만 화면이 흐릿하고 주변이 어두워 얼굴 등 정확한 정보를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들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는 주유소 직원의 증언을 놓치지 않았다. 카드전표 한 장을 확보한 경찰은 이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맡겼다. 지문감식 직원이 범행과 상관없는 지문을 제외하자 남은 건 누군가의 쪽지문뿐이었다. 몇 년 전 같으면 읽어낼 수 없어 아무런 단서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도입된 첨단 감식기법에다 지문감식 20년 경력의 베테랑 여경이 투입됐다.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은 동종(강도강간) 전과자 중 일치되는 인물 몇 명으로 범위를 압축시켰다. 경찰은 21일 지문 감식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인물들에 대한 주변조사를 통해 차량 방화 장소인 성북구에 산 적이 있는 신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본보 23일자 12면)하고, 소재지 파악과 휴대폰 통화내역 등 추적에 나서 하루 만에 범인들을 붙잡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CCTV와 목격자 진술만으로 특정 용의자를 지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지문을 발견할 수 있어 신씨의 인적 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계획적 범행 가능성
피의자 신씨 등은 강도강간 등 혐의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둘은 경기 안양교도소 동기로 친하게 지냈다. 이씨는 지난해 9월(4년 복역), 신씨는 지난해 12월(4년6개월 복역) 각각 출소한 뒤에도 함께 어울려 다니며 같은 중국집에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일단 이들의 범행을 성폭행을 위한 납치살인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범행 후 은신하고 있던 목동의 다세대 옥탑방과 중국집이 피해자 한씨의 집과 불과 40~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점으로 미뤄 이들이 면식범으로서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성북서 관계자는 "이들이 중국집에서 잦은 통화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잠복해 검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성북서로 압송된 피의자들은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등 범행을 부인하거나 함구했다. 그러나 경찰이 검거 당시 압수한 휴대폰에서 이들이 서로 '뉴스 봤냐' '앞으론 그러지 말자' 등 문자를 주고 받은 점과 CCTV에 찍힌 것과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점 등을 추궁하자 범행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피해자의 집 앞 주차장에서 납치한 건 인정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행동기와 여죄 등을 조사한 뒤 25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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