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ㆍ국방장관 회의와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개최로 숨가쁘게 이어져온 천안함 외교전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는 모양새다. 동해에서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고 미국이 추가 대북제재를 공언했지만 국면은 점차 출구를 찾는 쪽으로 향할 게 분명해 보인다. 이쯤 해서 지난 4개월 동안 천안함 사건으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외세 영향력 커진 대응책
북한을 겨냥해 쏟아내고 다짐한 군사적 조치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우여곡절 끝에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한 한미 양국은 최대 규모의 훈련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매년 10여 차례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해오고 있고, 이미 지난해 서해에서 미 항모가 참가하는 훈련을 했던 것 등을 감안하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미국의 눈치보기로 ’따귀 빼고 기름 뺀’ 형태로 축소된 때문이다.
휴전선 일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대북 전단 살포 등 심리전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북한의 말 한마디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당장이라도 행동에 들어갈 것처럼 거침없이 쏟아냈던 군사적 대응조치는 애당초 한계가 뻔히 보이는 것이었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을 비롯한 외교적 조치도 성공적이라고 하기 힘들다. 공격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실패나 마찬가지다. 북한도 성명이 나오자 환영의 입장을 보였다는 것은 천안함 사태의 진실이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음을 입증한다. “한국의 외교력에 큰 상처가 났다”는 외신들의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접는 듯했던 미국이 막판에 북한 돈줄 죄기에 나서겠다고 밝혀 체면을 세워줬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기조는 6자회담 재개 논의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적 포석 성격이 짙어 실효성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많다.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더 심각하다. 공격주체를 둘러싸고 좌우 이념대립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고 지금도 수면 하에 잠복돼 있다. 안보태세의 총체적인 허점이 드러나 국가적 망신을 샀을 뿐 아니라, 감사결과에 대해 군 수뇌부가 “군을 매도한다”며 반발하는 등 징계대상자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우리가 충격과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 강화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가 그렇고 방위비 협상, 무기 구매, 나아가 한미FTA 추가협상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미동맹 강화가 필연적으로 한중과 한러 관계의 악화를 가져오고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근 한 달 동안 한미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쏟아내며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입김이 커지고 중국의 대응이 수위를 높여갈수록 우리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천안함 사건은 46명의 고귀한 목숨만 희생된 게 아니라 국론분열과 안보의 허점, 외교력의 부재, 외세의 간섭 확대 등 온갖 생채기만 남았다.
북한 다룰 방법 고민해야
이제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됐다. 허구한 날 괴롭히고 때리는 성질 못된 이복형제가 이웃에 살고 있다고 하자 . 횡포를 견디다 못해 동네아저씨들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라”는 말뿐이다. 친하게 지내는 힘센 아저씨에게 따로 도움을 요청했더니 “더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만 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무얼까. 방법은 두 가지. 먹을 것도 주고 그 집에 놀러도 가면서 친하게 지내든지, 아니면 그 형제가 아예 덤빌 맘을 먹지 못하게 스스로 열심히 힘을 기르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충재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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