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노숙 소녀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기소된 가출 10대 4명에게 대법원이 그제 무죄를 선고했다.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지 2년 6개월 만이다. 그 사이 이들은 1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다행히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살인자 누명은 벗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민주ㆍ법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인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공권력은 법이 정한 원칙과 절차를 따라야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국민 기본권을 존중하기는커녕 조작에 가까운 수사로 사회적 약자의 인격과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말았다. 아이들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검찰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거나 그들의 혐의를 벗겨 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중처벌 등으로 겁을 주거나, 자백하면 선처하겠다고 회유하며 범행 자백을 유도했다. 물증은 하나도 없고, 수사 단서라고는 어느 범죄자의 제보뿐이었는데도 검찰은 아이들을 구속부터 해놓고 추궁했다. 결과는 허위 자백이었다. 아이들은 공권력의 서슬 앞에서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폭행이나 협박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가출 청소년들에게 가해진 검찰의 서슬과 엄포는 강압으로 규정해도 충분하다. 검찰은 가출 청소년들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라는 사실은 간과한 채 범인 짜맞추기에만 골몰했다. 범인으로 지목된 10대들이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부모 등 보호자와 명망 있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신분이었다면 이런 수사를 할 수 있었을까. 검찰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또 한번 검찰에 불명예를 안겨줬다. 검찰은 강압 수사나 인권 유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놓았던 제도 개선책을 다시 점검하기 바란다. 일선 검사들이 실적과 공명(功名)에 눈멀지 않도록 실효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 원칙이 굳건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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