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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버스트' 인간 행동,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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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버스트' 인간 행동, 예측할 수 있다

입력
2010.07.2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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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 바라바시 지음ㆍ강병남 등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448쪽ㆍ1만8,000원

과학은 인간의 미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물리 법칙에 따른 자연 현상이라면 모를까,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인간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다. 아무개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안다는 것은 점술가나 예언자의 몫이지, 과학이 다룰 바가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멋대로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이나 사건을 분석하는 복잡계과학과 통계물리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사용 기록이나 웹 접속 기록 등 과거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 개인의 구매 성향을 분석해서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헝가리 출신 과학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43ㆍ미국 노스이스턴대 특훈교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연구하는 ‘인간 역학(Human Dynamics)’은 과거의 행동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패턴이 나타나는 원인을 밝혀 미래의 행동까지 예측하려고 한다. 그건 일기예보를 하듯 개인의 인생과 역사의 향방을 예측하는 놀라운 과학이다. 분석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고, 좀더 정확한 예측 도구가 발달한다면, 전염병의 확산, 전쟁이나 테러 같은 재앙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는 네트워크이론을 소개했던그의 화제작 의 후속작이다. 는 2002년 국내 번역 출간돼 센세이션에 가까운 호응을 얻었다. 링크가 웹이든 실생활이든 공간 속에서 네트워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보여줬다면, 는 시간 속에서 네트워크가 펼쳐지는 방법과 원리를 설명한다. 웹이나 인간 관계의 그물망이 다수의 작은 노드(마디)와 소수의 허브(거점)로 이뤄지듯, 인간의 행동도 다수의 작은 사건과 소수의 큰 사건으로 이뤄진 멱함수 패턴을 보인다는 것, 그로 인해 특정 사건이 어느 순간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성’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관통하는 법칙이라는 것, 그런 폭발성의 원인은 ‘우선 순위 결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폭발성(버스트)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잠잠하던 일상에 어느날 정신 못차리게 들이닥치는 사건들, 주가의 갑작스런 폭락, 순식간에 지구 전체로 확산되는 금융위기, 어느날 느닷없이 터지는 누리꾼들의 댓글 잔치…. 이런 일들은 종잡을 수 없는 무작위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폭발성은 인간의 모든 행동에 나타나는 규칙이라는 것이다.

우선 순위 결정이 어떻게 폭발성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예로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 제6권이 나온 날과 프로야구단 보스턴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수십년 만에 우승한 날 병원 응급실의 환자가 급감한 일을 든다. 해리 포터를 보려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승리를 자축하느라, 사람들이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과 역사소설을 결합한 이중구조로 돼 있다. 16세기 헝가리 십자군 이야기가 절반을 차지한다. 십자군 대장으로 원정에 나섰던 주인공 죄르지 세케이는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도중 귀족들로 이뤄진 아군 기병대의 공격을 받자 반란을 일으켜 농민군을 이끌고 싸우다 처형된 인물이다. 변덕스런 역사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그의 운명을 예견한 귀족이 있었다. 농민들로 십자군을 모을 때 반대했던 귀족 이슈트반 텔레그디다. 텔레그디는 세케이의 십자군이 반란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저자가 역사 이야기를 과학 이론과 나란히 전개한 것은, 과학이 역사까지 예측할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한 대담한 시도다. 세케이는 역사의 무작위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미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그에 따른 디스토피아적인 전망도 덧붙인다. 휴대전화와 GPS, 감시카메라, 웹 로그인 등이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오늘날, 우리의 과거는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엄격한 규제 덕분에 비교적 안전해 보이지만, 미래는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악의 경우, 나의 미래가 남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말은 저자의 말대로 심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발을 떼기 시작한 인간역학의 미래는 궁금증을 억누르기 힘들 만큼 흥미로운 분야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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