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아온 데스먼트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은퇴를 발표했다. 투투 대주교는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10월 7일 79세 생일 이후 공적인 생활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 반대에 평생을 바친 인권운동가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투투 대주교의 퇴장으로 남아공은 지난 30년간 흑인 차별과 탄압 속에서 화해와 평화를 역설했던 두 목소리를 모두 잃게 됐다. 2004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고령을 이유로 공적활동 은퇴를 선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 활동을 접고 칩거 중이다. 투투 대주교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모임과 데스먼드 투투 평화센터 관련 활동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언론과의 인터뷰나 새로운 일정은 잡지 않겠다고 했다.
남아공 인터넷 뉴스사이트 IOL은 투투 대주교가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는 데 대한 홀가분함을 전하며 특유의 유머로 기자들을 웃기고 울렸다고 전했다.
은퇴 선언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세인트 조지 대성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투투 대주교는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공항과 호텔에서 보냈다”며 그 동안의 고단함을 말했다. “미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서도 ‘이게 정말 나인가’ 고민했다”는 그는 대단한 위치에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한 것은 가족이라고 말했다. 항상 고요히 사색에 잠기거나 독서할 시간을 갈망했으며, “오후에 아내와 루이보스차를 홀짝이거나, 크리켓 경기를 보고, 손자손녀들을 찾아다니며 여행하고 싶다”고도 했다.
회한은 없냐는 질문에는 “아직도 청진기를 써보고 싶다. 하얀 가운을 볼 때면 특히 그렇다”며 의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어려서 결핵을 앓은 투투 대주교는 의사를 지망했으나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교사를 거쳐 신부가 됐다. 투투 대주교는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차별과 학살에 비폭력으로 대항,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에는 만델라 당시 대통령이 꾸린 진실화해위원회(TRC) 의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진정한 치유는 처벌이 아닌 진실에서 나온다”며 박해자를 용서하는 정책에 앞장 서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데 기여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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