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2’에 세계 6위의 억만장자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로렌스 조셉 엘리슨)이었다. 오라클이 후원한 이 영화에서 엘리슨은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슈퍼영웅 토니 스타크와 악수를 나눈다. 네 번의 결혼, 초호화 요트와 자가용 비행기를 모는 사치스런 생활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악동’ 엘리슨이 토니 스타크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던 기자에겐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똑똑한 악동
엘리슨의 원래 성은 스펠슨이다. 유대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생후 9개월 때 외삼촌 부부에게 입양됐는데 엘리슨은 48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생모를 만났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외삼촌은 러시아와 유대식 성을 버리고 엘리슨으로 개명했다.
엘리슨은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고 두뇌가 비상했지만 성실한 학생이라고 할 순 없었다.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수업은 듣지 않았다. 하루는 라틴어 교사가 “이번에 또 라틴어 수업에 낙제하면 인생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하자 “가톨릭 신부가 되지 않을 테니 라틴어는 배울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은 일리노이대 2년, 시카고대 한 학기를 다니고 중퇴했다.
모험심과 낭비벽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20대에 1,000달러짜리 자전거와 3만달러짜리 보트를 사기도 했던 그는 갑부가 된 후론 더 비싼 요트와 자가용 비행기는 물론 심지어 전투기까지 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올해 2월 국제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컵’에 세 개의 요트를 이어 붙인 ‘USA-17’호를 타고 참가해 승리하는 등 실제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USA-17호를 만드는 데 쓰인 돈은 무려 1억5,000만달러. 비행기도 직접 조종한다. 이 같은 돈 드는 취미 때문에 엘리슨은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연봉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종종 가계 수지가 적자일 때가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처럼 성공했지만 안티-게이츠 선봉
엘리슨은 빌 게이츠처럼 IBM으로부터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1976년 IBM의 에드가 F 코드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라는 개념을 발표한다. 이는 다양한 데이터를 표로 구성하고, 어떤 항목으로든 쉽게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고객 데이터베이스라면 이름, 나이, 주소, 연락처 등 다양한 항목으로 값을 입력, 조회, 추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엘리슨은 이 개념을 보자마자 기업에서 활용하면 컴퓨터 산업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77년 재빨리 회사를 차려 개발에 나선 그는 79년 ‘오라클2’를 발표했다(오라클1은 없다).
그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영업 제일주의를 표방했다. 실적이 좋은 사원에겐 무조건 최고대우를 해 주었다. 이같은 전략은 처음에는 시장 안착에 도움을 주었으나 얼마 후 한계에 부딪쳤다. 영업 직원들은 일단 계약을 따면 미래에 발생할 매출까지 미리 계산해 수당을 챙겼으나, 나중에 실제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기업에는 손해가 됐다. 일단 계약을 맺기 위해 없는 기능을 덧붙이거나 성능을 과장하다 보니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 찍혔고, 나중에 잇따라 거액의 소송을 당했다. 1990년 오라클은 경영악화에 따라 전 직원의 10%를 감원하게 된다.
그러나 오라클의 강력한 경쟁사였던 사이베이스, 인포믹스는 90년대 들어 차례로 타사에 인수됐고, 오라클은 자연히 승리자가 됐다. 정보기술(IT) 버블까지 겹쳐 2000년 한때 엘리슨의 주식가치는 빌 게이츠를 능가할 정도였다. 닷컴 붕괴와 9ㆍ11 테러로 주가가 추락하면서 제2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2003~2004년 반독점 소송까지 거치며 피플소프트를 적대적 인수하는 등 지속적인 M&A를 통해 다시금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최강자가 됐다.
그는 빌 게이츠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창업을 했고, 기업공개(IPO)는 마이크로소프트의 IPO 하루 전에 기습적으로 했다. 부도덕한 기업 이미지를 감수하면서도 시장을 선점한 것이나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MS가 윈도우용 SQL 서버를 저가에 팔면서 기업 데이터베이스 시장에 진입하자 ‘안티 MS’ 진영의 선봉에 섰다. 그는 “아마 미래엔 MS가 윈도에 점심식사를 공짜로 끼워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은퇴 후 ‘기부천사’로 살아가고 있는 게이츠와 달리 그는 어마어마한 연봉이나 과소비에 비해 기부에는 인색한 편이다. 과거 10억달러 어치의 주식을 팔면서 내부자 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되자,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대신 1억달러를 기부했다. 2006년에는 로런스 서머스 총장이 물러났다는 이유로 이전에 하버드대에 약속했던 1억1,500만달러의 기부를 철회한 적도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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