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트병 화분의 나무처럼 우리 꿈도 심었어요"
"내 나무는 반짝이를 두 개나 낳았다.", "내가 만든 나무가 제일 크지?", "얘 이름은 연꽃선인장이다…."
19일 오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반도지역아동센터. 한 교실에 모여 앉은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 30여명이 서로 자기가 만든 '작품'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한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에 질세라 금세 주변에 있는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진다. 얼굴에 장난기가 넘치는 한 아이는 아예 악을 쓰기도 한다. 아이들이 여럿이면 별로 말이 없는 아이가 적어도 한 둘은 있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날 아이들은 페트병을 활용해 화분을 만들고 화초를 심었다. 지난달 25일부터 5주 일정으로 총 10회 진행되는 미술창작 프로그램 중 하나다. 손바닥만한 작은 화분에 화초를 정성스레 심은 뒤 페트병 한 쪽을 잘라 내서 집어 넣고 반짝이와 리본, 색실 등으로 예쁘게 꾸몄다. 곁에서 지켜보던 이은미 아동센터장은 "아이 한 명이 사용하는 재료값은 모두 합쳐 3,000원 정도지만 페트병 화분을 만드는 아이들의 손길과 웃음은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여느 낙후지역 공부방과 마찬가지로 이 곳 아이들 대부분도 팍팍한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부모들로부터 이렇다 할 만한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처지다. 센터에서 제공하는 한 끼 식사가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 센터장은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치면 곧바로 직격탄을 맞는 계층이 바로 일용직이나 파출부, 소규모 공장 근로자로 일하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라며 "CJ그룹의 도너스 캠프(donors camp)를 몰랐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이 도너스 캠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이었다. 교회에서 중고생 학습지도를 하다가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지 않으면 가난의 대물림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2002년 공부방을 만들었고, 2005년에는 지역아동센터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일부 받게 됐지만 재정문제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바로 그때 CJ그룹이 나눔재단을 설립해 공부방을 지원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곧바로 해당 사이트를 찾았다.
이 센터장은 "대기업들이 짜놓은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실제 아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제안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CJ그룹의 도너스 캠프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이 제안되면 이를 기부자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고리 역할만 할 뿐 특정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동시에 기부자가 직접 기부할 곳을 정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신 기부자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에 쌓인 기부액만큼을 CJ그룹도 함께 기부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을 도입, 두 배의 사랑이 전달되도록 했다.
도너스 캠프를 만난 뒤 센터 활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때때로 생태체험과 문화탐방의 기회도 갖게 됐고, 아직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 유기농 식단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알게 모르게 삶의 그늘이 드리워진 아이들이 가끔씩이지만 미술체험을 통해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닳고 헤진 겨울 옷을 새 옷으로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내년엔 제주도로 단체여행을 다녀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센터장은 "이전에는 간신히 아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데에도 급급했지만, 이제는 교육의 질을 어떻게 높여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곳 중학생 19명 가운데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해온 아이들이 많은데, 교사들 모두 이들의 성적 향상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꼭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직업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이를 위해 원어민 영어강사와 주요 과목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들도 배치했다.
이 센터장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칭찬을 통해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시기별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도너스 캠프야말로 우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말했다.
■ CJ나눔재단 도너스 캠프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필동의 CJ인재원에서 12명의 '특별한' 기부자를 만났다. 두 살배기 유현준군과 장애2급 기초생활수급자인 77세 차보석 할머니, CJ오쇼핑의 기부특별방송 '오쇼핑의 기적' 진행자인 탤런트 김나운씨 등이었다. 이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쳬?뒤 "지역 공부방이 대안학교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음악ㆍ미술 등 각자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적극 후원하겠다"고 말했다.
CJ그룹에게 7월21일은 뜻 깊은 날이었다. 1999년 사회공헌 전담 부서로 출발해 2005년 공익재단으로 확장된 CJ나눔재단이 출범 5주년을 맞이한 것. 이 회장의 뜻에 따라 행사는 조용히 치러졌지만, CJ나눔재단이 운영하는 'CJ 도너스 캠프(donors camp)'의 지난 5년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도너스 캠프는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하고 있는 온라인 기부 사이트로, 기업 온라인 기부문화의 첫 사례다. 지금까지 전국 2,160여 곳의 공부방에 117억원을 지원했고, 기부자로 참여한 인원은 16만명이 넘는다.
도너스 캠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 중심적 기부 시스템'이다. 공부방 교사가 현장에서 필요하다고 느낀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제안서를 사이트에 올리면 기부자들이 이를 직접 검토한 뒤 후원하고 싶은 제안서를 선택해 기부하는 방식이다. 재단 측은 몇몇 공부방에만 지원이 몰리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만 한다.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안한 뒤 여러 공부방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검토한 뒤 이 중에서 일부를 선별해 지원하는 통상적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기부자들이 도너스 캠프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매칭 그랜트' 방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자들이 적립한 기부금이 1만원이면 CJ도 1만원을 기부함으로써 공부방에는 총 2만원이 지원된다. 기부자로서는 자신의 사랑이 두 배로 커지는 상황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투명성을 보장한 것도 큰 장점이다. 기부자 누구라도 도너스 캠프 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기부한 프로그램에 얼마가 쌓였고 언제 어느 곳에 쓰이는지를 훤히 알 수 있다. 사이트 내에서 기부자가 수혜자인 공부방의 교사나 어린이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CJ그룹이 도너스 캠프라는 색다른 방식을 통해 공부방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는 것은 "가난으로 인해 빈곤이 대물림 돼서는 안 된다"는 이 회장의 나눔철학 때문이다. 이 회장은 특히 공부방 어린이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직업 체험교육을 집중 후원하자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CJ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제빵사와 요리사, 시나리오 작가, 연구원, 방송인 등과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멘토 역할을 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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