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휴가, 당신 인생에 깊은 기억을 남기세요.
올 여름 휴가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예년에도 그랬듯 예약해놓은 콘도나 민박을 찾아 낮에는 주변 숲그늘에서 물놀이 하다가, 저녁이면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키실 건지요. 모처럼의 휴가를 인생에 굵직한 매듭을 새기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떤가요. 그동안 막연히 생각만 했던 꿈을 실천해보는 겁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나만의 로망을 펼쳐내는 겁니다.
▦남자들의 로망 지리산 종주
회사원 함인영(47)씨는 올 여름 휴가를 애타게 기다려왔다. 일찍부터 열 세살 짜리 아들과 단 둘이 지리산을 종주할 계획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함씨가 원래 산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삶이 조금씩 무료해지고 덧없다고 느껴지는 나이.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본인에겐 잃어버린 사나이의 야성이 필요했고, 자신을 꼭 빼닮은 ‘아바타’ 아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이겨낼 힘을 불어넣고도 싶었다. 산행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속내를 나누기에도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지리산은 1박2일이나 2박3일 종주를 하기엔 가장 안전한 산이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쉽게 가능하다. 산에서 식수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다른 산에 비해 오르락 내리락도 그리 급한 편이 아니다.
지리산의 출발점은 성삼재다. 차가 여기까지 올라온다. 노고단을 거쳐 임걸령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까지 산행을 하곤 벽소령휴게소에서 1박을 한다. 힘이 부칠 것 같으면 삼각고지 직전의 연하천대피소나, 더 부담스러우면 화개재의 뱀사골탐방지원센터에서 1박을 계획한다.
다음날 벽소령을 출발해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세석 촛대봉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에서 두번째 밤을 보내곤 세번째 날 새벽 천왕봉에 올라 장엄한 지리산 정상의 일출을 맞고는 중산리쪽으로 하산하면 종주가 끝이다. 첫날밤을 연하천이나 뱀사골에서 보낸 초보 산행객들은 두번째 밤을 세석대피소에서 보내는 게 좋다.
지리산의 산장은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자신의 산행 능력에 맞춰 미리 코스를 짤 때 산장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산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산악인 이종승씨는 “굳이 종주에 목숨 걸지 말라”고 했다. 그는 “종주라는 게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마라톤 산행일 뿐 종주를 했다고 그 산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지리산을 제대로 알려면 꼭대기와 함께 속살인 계곡도 함께 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리산의 경우 2박3일 종주 대신 당일 코스로 여러 번 나눠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했다.
종주를 하기에 또 적당한 곳은 덕유산이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타고 올라 향적봉 중봉 동업령 무룡산을 지나 삿갓재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월성치 남덕유산을 지나 영각통제소로 내려오는 길이다. 한 여름 덕유산 종주길에선 남덕유-영각통제소 구간이 가장 하이라이트다. 화사한 여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덕유산을 정말 사랑하는 산악인들은 곤돌라를 타지 말라고 권한다. 덕유산의 매력 덩어리인 무주구천동 계곡을 왜 빠뜨리냐는 것이다. 무주구천동에서 시작해 천천히 올라 향적봉대피소에서 하루 묵고 덕유산의 장관인 일출을 감상하고 서둘러 산행을 계속 하면 남덕유를 지나 영각통제소로 하산이 가능하다.
설악산은 종주가 간단치 않다. 전문 가이드가 필요하다. 계곡에서 길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날이 맑으면 괜찮지만 안개가 끼거나 비구름이 가득 산을 덮을 경우 이정표 찾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코스는 한계령에서 시작해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찍고는 희운각대피소나 중청 대피소에서 1박을 한다. 다음날 설악의 하이라이트인 공룡능선을 타고는 마등령에서 백담사 쪽이나 설악동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는 것이다. 1박2일이 일반적이지만 2박을 할 경우 오세암에서 1박을 더 하고 백담사로 내려오면 된다.
지도와 랜턴, 물병, 구급약, 나침반 등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미리 지도를 보고 계획을 세워보곤 전문가로부터 검토를 받는 게 좋다. 간식도 중요하다. 건과일 초콜릿 등 행동식을 준비, 걸으면서 계속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몸이 지치지 않는다. 옷차림은 풀독과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긴팔 티셔츠에 긴바지가 좋다. 등산화는 필수다. 선글라스와 모기퇴치제 등도 요긴하다.
밤을 보낼 산장엔 일찍 도착하도록 스케줄을 잡는 게 좋다. 산장에 늦게 도착하면 누울 자리 얻기도 쉽지 않고 끼니를 때우기도 불편하다. 아침 일찍 시작해 오후 일찍 끝내는 게 종주산행의 원칙이다. 비 온 다음날 바위에 오를 때는 뱀을 조심해야 한다. 뱀들이 몸을 말리러 바위에 많이 올라와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www.knps.or.kr 지리산사무소 (055)972-7771, 덕유산사무소 (063)322-3174, 설악산사무소 (033)636-7700
▦제주 올레에서 놀멍쉬멍
회사원 김미희(32)씨는 미혼甄? 김씨는 지난해까지는 휴가 때마다 해외로 나갔다. 남들에게 기죽고 싶지도 않았고, 또 해외여행이 1년간 수고한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가을 주말여행으로 친구들과 우연히 제주 올레길을 경험한 직후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한국의 산하를 걷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지 미처 몰랐다. 김씨는 올해 초부터 휴가는 제주 올레로 일찍부터 못을 박았다. 되도록 올레의 많은 구간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서다.
제주 올레길은 모두 21개 코스로 이어졌다. 총 연장 343km다. 이중 추자도와 가파도 우도 등에 조성된 길을 빼면 제주 본섬엔 18개다.
모두 시원한 제주 바다나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 올레 사무국에 여름에 적당한 그늘이 많은 코스를 물었더니 9코스, 14-1코스, 13코스를 추천했다. 9코스는 대평-화순 구간이다. 길의 중간 안덕계곡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코스다. 안덕계곡은 화산섬 제주의 몇 안 되는, 사철 물이 내내 흐르는 계곡이다. 최근 유명 관광지로 거듭난 서귀포시 효돈의 쇠소깍과 분위기가 흡사하다. 그보다 작지만 더 아늑하고 조용한 계곡이다.
14-1코스는 저지-무릉을 잇는다. 동물농장 숲길과 오설록 차밭을 지나는 이 길은 저지곶자왈과 무릉곶자왈 등 화산지형의 깊은 계곡을 지난다. 곶자왈은 제주 화산지대에 형성된 독특한 숲 지형. 곶자왈이 품고 있는 무성한 초록의 생명력이 온몸을 휘감는다. 13코스는 바다 대신 내륙으로 들어간다. 절부암 근처인 용수포구에서 시작해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중산간으로 이어진다. 용수저수지와 숲을 지나 낙천마을을 만나고 다시 숲과 오름을 오른다. 저지오름의 울창한 숲이 올레길의 수고로움을 식혀준다.
제주의 올레를 모두 걷는 데엔 21일이 필요하다. 하루 1코스 걷기가 가장 적당하기 때문. 하루 2코스도 가능하지만 다음날에도 계속 걸음을 옮기기엔 무리다.
제주 올레측에 여름 올레 여행 방법을 물었더니 “시에스타를 즐기라” 했다. 아침 일찍 시작해 걷다가 한낮 태양이 뜨거울 때에는 그늘에 찾아 들어 편안히 낮잠을 즐기곤, 3, 4시 넘어 볕이 수그러들 때 다시 걸음을 옮겨 나머지 구간을 완주하는 것이다.
또 여름엔 반드시 샌들이나 슬리퍼를 배낭에 챙겨가라고 권한다. 푸른 제주 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맘껏 제주의 바다를 즐기는 여행이 바로 진짜 올레 여행이다.
올레 코스 중 8코스 해병대길은 여름에 통제된다. 바다 바로 옆이라 파도가 높아서다.
올레길 여행을 위해선 먼저 길 공부를 하고 와야 한다. 제주 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코스를 확인하는 게 좋다. 무작정 제주를 찾았다면 공항에 마련된 올레 안내소에 들러 자세한 설명을 듣고 지도를 얻어 자신이 걸을 코스를 계획하길 권한다.
올레 여행 내내 가슴에 담을 말은 ‘간세다리(게으른 걸음)’,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 이 두 단어다. 코스 완주에 목표를 두지 말고 천천히 걷는 것이다. 모자와 선크림, 발 편한 신발, 충분한 물 등은 올레 뿐 아니라 모든 트레킹에 필요한 것들이다. 제주 올레 사무국 (064)762-2190
제주 올레 말고도 아름다운 걷는 길들이 많다. 장엄한 지리산을 옆에서 지켜보는 지리산 둘레길, 소설가 이순원씨가 펼쳐놓은 강릉의 바우길, 변산의 아름다움을 소박하게 드러낸 부안 마실길, 경북 동해의 정수를 걷는 영덕 블루로드 등이 며칠을 두고 걸어볼 만한 길들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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