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아닌 '우리'가 경쟁하는 시대… 건강한 네트워크가 생존 열쇠
애플 ‘아이폰’의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장터인 ‘앱 스토어’(App Store)는 문을 연 지 2년도 안 돼 20만개가 넘는 애플리케이션이 올라왔다. 애플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협력의 기반이 되는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공개하고, 수익도 개발자 70%ㆍ애플 30%로 나누기로 하자 너도나도 뛰어든 결과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용 시스템은 사실 4만개 이상의 협력사와 600만명 이상의 개발자 간 협력으로 가능했다. MS는 이런 기업 생태계에서 광범위한 혁신 네트워크의 중심인 쐐기돌(아치나 둥근 천장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돌로 키스톤(Keyston)이라 함)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장터인 이베이(eBAY)의 핵심 경쟁력은 수백만명의 판매자와 수억명의 소비자를 연결하는 키스톤 역할에 충실했다는 데 있다. 누구라도 쉽게 팔고 싶은 물건을 올릴 수 있고, 소비자는 이를 언제든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 것이다.
21세기 경영 환경의 구도가 기업 생태계간 경쟁으로 변화하며 대기업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기업은 이제 다른 중소기업들과 개인들이 맘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춧돌(플랫폼)을 놓고, 이렇게 형성된 시장이 소비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쐐기돌(키스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최근 기업호민관실이 정부에 보고한 ‘대ㆍ중소 벤처기업 간 공정거래 선순환 생태계 구축 연구’에 따르면 개별 조직의 기술과 자본 투입에 의존하는 ‘나홀로 개발’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개별 기업의 힘과 기술로 승부를 거는 시대에서 협력과 상생의 네트워크를 통해 생태계 간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젠 개발 과정부터 다양한 조직이 동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상호 작용하며 함께 진화하는 집단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누가 더 건강하게 구축하느냐가 생존의 열쇠라는 게 보고서의 골자이다.
이는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멸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게 기업호민관실 설명이다. 꽃의 꽃가루받이(수분) 활동을 도와주는 꿀벌이 없다면 식물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 작물의 3분의1이 수분활동으로 열매를 맺고, 이 중 80%가 꿀벌을 통해 이뤄진다는 게 지금까지 연구결과이다. ‘나홀로 개발’은 벌이 찾지 않는 향기 없는 꽃이 되고 마는 반면 플랫폼은 많은 꿀벌을 불러 들이는 ‘향기로운 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애플 아이폰과 앱 스토어이다. 애플의 최대 경쟁력은 자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애플리케이션 유통시장-단말기로 연결되는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데 있다. 더 이상 ‘나’(I)가 아닌 ‘우리’(We)로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다양한 기업과 조직이 협력과 경쟁을 하면서 진화하는 기업 생태계에서는 가치 사슬의 좌우를 연결시켜 주는 키스톤 역할을 대기업이 해 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기업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생태계를 관리하는 핵심 대기업인 키스톤 기업이 다양성 확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식물이 같이 사는 경우 몇 가지 식물만 자라는 생태계에 비해 식물들이 더 크고 빠르게 자라는 것처럼 기업 생태계도 다양성이 확보돼야 어려운 시기도 더 잘 견딜 수가 있다는 원리다.
기업호민관실 관계자는 “앞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함께 지속 발전할 수 있는 비옥한 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상생 3.0’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방열소재 생산 中企 티티엠 "기술개발 노력하니 대기업들도 적극 지원"
충남 천안 테크노파크(CTP)에 위치한 중소기업 티티엠(TTM). 방열 소재ㆍ부품 전문 기업인 이 업체는 발광다이오드(LED) TVㆍ조명, 휴대전화, 컴퓨터 같은 기기들이 작동될 때 나오는 열을 적정하게 방출하면서 장비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노팀(NANOTIM)’이라는 제품을 생산한다. 삼성, LG, 현대차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기업들에게도 물건을 납품한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모듈에 들어가는 방열소재(PCM)는 미국의 하니웰, 레어드 등 유명 소재 기업들을 제치고 단독 공급하고 있다. 이 덕분에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 외국 기업들이 한국의 중소기업인 티티엠의 제품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제품에 장착해 빠르게 열을 식혀주는 이 회사의 방열부품인 엠트란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최고 기술로 인정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04년 1,2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34억으로 뛰었고, 올해는 그 보다 6~7배 더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유진 티티엠 사장은 “최근 들어 고속 성장할 수 있게 된 데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도움이 컸다”며 “항상 끊임 없는 기술개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대기업 관계자들이 자사 제품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기술이나 설비를 과잉 투자하지 않도록 조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상생의 생태계 경제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집착하지 말고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중소기업 혼자 힘으로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환경을 만들어주고 중소기업이 이를 발판으로 성장하는 관계가 돼야 진정한 상생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티티엠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이성봉 티티엠 사업부 이사는 “처음 대기업의 문을 두드렸을 때 작은 중소기업이 안정된 품질 수준을 유지하며 제품을 대량 생산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며 “한동안 외국 기업들에 비해 높은 기술력과 낮은 원가를 갖고도 납품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때 티티엠의 기술력을 먼저 알아본 것은 외국 대기업이었다. 2008년 독일 지멘스의 계열회사인 키몬다라는 업체에서 티티엠 제품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납품 요청을 해 왔다. 이 사실이 국내 전자부문 대기업들에도 알려졌다. 특히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기업들은 원가 절감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삼성전자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것도 이 때다. 중소기업이지만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지닌 업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티티엠의 든든한 파트너가 됐다. 삼성전자는 특히 티티엠이 납품처를 늘릴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의 인텔, 델(Dell), IBM, HP 등에 납품할 수 있도록 승인절차 등을 대신해준 것이다.
올해 티티엠 매출이 6배 이상 성장할 수 있게 된 비결이다. 티티엠은 이제 제품 다변화및 판매처 다양화를 통해 한국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다. 단순한 방열 부품 생산 업체에 그치지 않고, 방열소재까지 모두 망라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제 현대차와 LG전자도 티티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LED TVㆍ조명, 자동차 전조등 부품, 태양광 부품, 차세대 CPU 부품 소재 등이 대기업에게도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대기업과 상생하기 위해 중소기업인 우리도 끊임 없는 노력과 연구를 한다”며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닌 방열 부품 및 소재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LG관계자도 “우리 중소기업들이 해외시장 진출을 대기업이 적극 돕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상생의 새로운 성장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강희경기자 kstar@hk.co.kr
■ 불공정거래 개선 민관협의체 추진
양극화 해소와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손을 잡고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또 각 대기업이 신규 채용 확대를 비롯, 양극화 해소 방안 등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21일 정부 및 재계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과 상생 협력을 위해 보다 현장감 있는 과제를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위해 ‘민ㆍ관 불공정거래 개선 협의체’가 추진되고 있다.
협의체엔 공정거래위원회,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실, 중소기업중앙회,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전경련과 주요 대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는 공동 현장 실태 조사 등을 벌여 문제점을 파악한 뒤 실효성 있는 상생 협력 과제들을 발굴, 실행하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각 대기업이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을 인식, 다양한 양극화 해소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는 상태”라며 “조만간 신규 채용 규모 확대를 비롯, 공정 거래 및 상생의 경제를 향한 대책들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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