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의 꽃’으로 불리는 사찰 주지는 한 도량의 살림을 책임지면서 불법을 전파하는 막중한 자리건만, 이상하게도 주지론을 다룬 책은 보기 어렵다. 떠남과 머무름에 구애받지 않는 불교적 이상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어서는 안 될 자리. 어쩌면 욕망과 해탈, 살림살이와 깨달음이란 현실과 이상이 때로 어긋나고 충돌하는, 그 불교적 딜레마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주지 소임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맡고 싶어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 예민한 주제란 얘기다.
‘불교계의 글쟁이’로 꼽히는 원철(51ㆍ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스님이 이 껄끄러운 주제에 뛰어들어 본격적인 주지론을 펴냈다. ‘원철 스님의 주지학 개론’이란 부제가 붙은 (조계종출판사 발행)라는 책이다. 출판사측은 “그간 국내에서 주지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전혀 없었다고 보면 된다”며 “주지론에 대한 첫 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해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는 학승으로 살아온 원철 스님은 사형이 맡던 절을 6개월 잠깐 맡은 것을 제외하면 주지다운 주지를 해보지 않았다. 원철 스님은 “내가 주지를 안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주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주지론의 핵심은 수행과 행정의 구분을 넘어서자는 것인데, “살림을 살더라도 공심(公心)으로 산다면 도의 실천이요, 깨달음의 현현이다. 살림 사는 것 자체가 도라는 말이 된다”(106쪽)는 말에 녹아있다. 그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나눠 방장을 이판의 꽃, 주지를 사판의 꽃이라고 해왔지만 사실 중국이나 일본만해도 그런 구분이 없다”며 “소림사 방장은 곧 소림사 주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 경계를 넘기 위해 그는 부처님이 최초의 사찰인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주지였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주지를 맡았던 여러 선사(禪師)들의 일화를 들며 주지가 단순히 살림살이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 백운수단(1025~1072) 선사가 남긴 말씀대로 “주지는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지만, 그렇다 해서 날아다니는 것까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또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절은 주지를 할 사람이 많아서 탈이고 가난한 절은 맡을 사람이 없어서 문제다” “어느 절이든 주지실만큼은 사세와 관계없이 덩그렇게 잘 지어놓았다”는 등 주지 자리를 둘러싼 스님들의 세속적 욕심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명예욕에 대해 “마지막 남은 집착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치성해지는 것” “수행자를 끝까지 붙들고 마지막 스타일을 구겨놓을 수 있는 최후의 장애물”이라고 스님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원철 스님은 이와 함께 전국 곳곳의 사찰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 건축물을 답사한 건축기행문 (뜰 발행)도 함께 냈다. 우리 땅 곳곳의 불교 건축물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프랑스 라 투레트 수도원, 러시아 세르기예프 수도원, 유럽의 묘지 등 외국의 건축, 개성 선죽교와 금강산 신계사 등 북한 건축까지 두루 다루면서 그 속에 깃든 문화를 불교적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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