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1일 한미 외교ㆍ국방장관회의를 통해 2단계 대북 압박 카드로 고강도 금융 제재를 꺼내든 것은 “북한이 돈 줄을 죌 때 가장 아파했다”는 학습효과에 기인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방코델타아시아(BDA)와 같은 상당한 노력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얻어냈다”며 2005년 취해진 BDA식 금융 제재를 직접 거론했다.
북한은 23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을 통해 “추가 대북제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 당국 차원의 구체적 대응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 6자회담 복귀설을 흘리며 한반도 정세를 대화 국면으로 끌고 가려던 터에 예상보다 훨씬 강한 제재 수위가 나오자 북한의 속내도 복잡해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BDA 제재 당시 북한이 취한 대응 패턴을 보면 향후 행보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북한은 2,400만 달러 자산 동결의 결과로 전세계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차단되자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6년 1월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국이 막아버린 북한의 돈줄을 풀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중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후 북한은 그 해 7월5일 대포동미사일 발사, 10월9일 1차 핵실험 강행 등 무력 시위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2007년 미국이 동결 조치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 폐기에 착수키로 한 ‘2ㆍ13 합의’ 때까지 한반도는 위기감에 휩싸여야 했다.
그러나 BDA 사태 때처럼 북한이 이번에 군사적 조치를 감행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당시에는 수세에 몰린 북한을 외면했지만 현재는 적극적으로 북한을 비호하고 있다”며 “북한도 군사 행동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중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북관계는 대결 구도가 지속될 전망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22일 “북한 대표단이 언급한 동등한 조건의 6자회담은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응할 수 없다”며 5ㆍ24 대북 제재 조치를 근간으로 한 강경한 대북 정책이 유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당장 25일부터 한미 동ㆍ서해 연합 해상훈련이 실시되는 등 북한 압박에 초점을 맞춘 강경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란 분석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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