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ㆍ방송 겸영을 허용한 미디어법이 통과된 지 22일로 꼭 1년이 됐지만 일반인이 느낄 만한 미디어시장의 변화는 아직 없다. 법 강행 처리 과정에서 떠들썩했던 기억이 되레 생경할 정도다. 그러나 신방겸영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신문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방송시장의 점유율로 환산하는 기준의 얼개가 마련됐다. 신문 구독률과 방송 시청률을 합산하는, 이를테면 이종 매체의 중량을 섞어 계량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저울’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런 기준이 필요한 까닭은 신방겸영으로 출현할 수 있는 거대 미디어기업의 여론 독점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개정된 방송법은 한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이 30%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당장 8월 1일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미디어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두 지표인 구독률과 시청률을 분리할 수 없게 됐다. 신문을 ‘읽는’ 행위와 TV를 ‘보는’ 행위를 등가의 미디어 수용 행위로 환산하는 복잡한 산수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이유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8일 시청점유율 산정에 관한 기본계획을 의결하면서, 현재 대도시에 표본이 집중된 시청률 조사를 전국 16개 시도로 대상을 넓혀 피플미터(시청률 조사장치) 방식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3일 간담회를 열고 신문과 방송업계의 의견을 들었고, 15일에는 신문의 부수 인증기관으로 한국ABC협회를 지정했다. 기초 자료인 시청률과 구독률을 각각 산정하는 방식은 결정된 셈이다.
남은 것은 이 둘을 합산하는 공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강은 광고비를 잣대로 삼아 신문과 방송, 두 매체의 영향력을 일정한 비율로 교환 가능한 수치로 계량화한다는 것이다. 매체의 영향력은 해당 매체에 들어오는 광고비에 비례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셈법이다. 즉 방송 시장의 전체 광고 매출이 100이고 신문 시장의 전체 광고 매출이 50이라면, 신문 구독률을 방송 시청률로 환산할 때 적용되는 상수는 0.5다. 예컨대 A신문의 구독률이 10%라면, 이 신문의 시청률은 5%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사보도 분야의 영향력은 단순히 광고비를 기준으로 삼아 환산하지 않고 설문조사를 추가해 측정할 계획이다. 뉴스와 시사토론 프로그램 등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과 같이 취급할 경우 나타날 왜곡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뉴스를 접하기 위해 지난 1주일 동안 이용한 매체”를 물어 얻은 매체효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용률과 이용시간을 곱해 만든 영향력 지표에다 추가로 적용하는 가중치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방통위의 이런 산수에 대해 미디어업계 안팎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신문 구독률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하는 것은 본래 여론 독과점을 막기 위한 장치인데, 지상파 방송 5개사의 시청점유율을 모두 더해도 50%대 초반에 머무는 상황에서 30%라는 제한 조항 자체가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마련되는 환산 제도는 방송 진출을 노리는 거대 신문사에 명분을 더해주기 위한 셈법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리할 것이 없는 신문사들로서는 종합편성채널 사업권 획득을 위한 한 단계 정도로 인식하는 눈치다.
김서중 성공회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일률적으로 환산되는 영향력 지표를 개발하는 것보다 한 매체의 강자가 다른 매체에서도 강자로 군림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매체별 영향력을 합산하는 공식을 결정하기 전에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는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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