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이 열린 지난 달 29일 일본 도쿄 시부야 일대 편의점에는 대낮부터 젊은이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야외 응원전을 앞두고 편의점을 찾은 사토 게이코씨는 “친구들과 밤샘 응원을 작정하고 맥주와 안주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들렀다”며 “다이어트 중이라 이왕이면 살찔 우려가 적은 라이트 맥주를 골랐다”고 말했다.
# 2008년 일본에서는 ‘제로’라는 단어가 그 해 유행어 리스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제로는 일본의 대표적 맥주회사 기린이 내놓은 탄수화물(당질)을 완전히 빼고 칼로리를 낮춘 대표적 라이트 맥주. 기린은 이 제품의 선전에 힘입어 그 해 맥주시장에서 아사히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일본은 가히 맥주의 천국이다. 국민들이 한해 소비하는 술의 70%가 맥주일 만큼, 맥주 선호도가 높다. 소비량이 많은 만큼 종류도 다양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맥주만 100종이 넘는다.
이중에서도 최근 저칼로리, 저탄수화물을 내세운 이른바 ‘라이트 맥주’의 인기가 높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 음주자가 늘고 있고, 남성들도 비만을 우려, 칼로리가 높은 술을 꺼리는 웰빙 트렌드의 영향 때문이다.
기린의 제로는 열량이 67㎉(350㎖기준), 산토리의 제로나마는 81㎉에 불과하다. 일반 맥주에 비해 30~50% 가량 낮다. 여기에 뱃살을 만드는 또 다른 원인 중 하나인 탄수화물은 제로로 줄였다.
일본 맥주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맥주 음용인구의 45%가 주 1회 이상 저칼로리 라이트 맥주를 마시고 있다”며 “실제로 일본의 발포주(맥아비중이 25% 미만인 맥주) 시장 중 절반 가량은 라이트 맥주가 대체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이트 맥주는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아이템이다. 실제 지난 해 미국시장에서 소비된 맥주의 51%가 라이트 맥주였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맥주 역시 라이트 맥주의 한 종류인 버드 라이트가 차지했다.
웰빙 열풍이 거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닐슨 코리아의 브랜드 진단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절반이 맥주를 마실 때 칼로리를 가장 걱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추세를 반영, 국내에서는 오비맥주가 5월 카스 라이트 맥주를 출시, 저칼로리 맥주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카스 라이트는 100㎖당 열량이 27㎉로 일본의 라이트 맥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최저칼로리 맥주로 알려진 하이트의 S맥주(100㎖당 30㎉)보다도 낮다.
출발은 순조롭다. 카스 라이트는 발매 45일만에 1,000만병을 팔아 치웠다. 이는 당초 목표치의 2배에 가깝다. 월드컵 열기에 이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판매량은 더욱 늘어 20일 현재 판매량 2,000만병을 넘어섰다. 이는 올 연말까지 예상했던 목표를 초과한 수치로, 덕분에 라인 증설도 고려하고 있다.
김기화 오비맥주 홍보부장은 “맥주를 마시면서도 살찌는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며 “카스 라이트의 인기에 힘입어 카스 브랜드의 입지를 다져나가겠다”고 밝혔다.
도쿄=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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