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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6> 25년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주인 은종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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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6> 25년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주인 은종복씨

입력
2010.07.2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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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만해도 대학가의 서점이 문을 닫으면 안타까워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곳이 세련된 카페로 변하든, 편리한 패스트푸드점으로 바뀌든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1980, 90년대의 대학가 서점은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전파했다. 특히 대학 앞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진보적 생각과 이론을 퍼뜨리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사회 변화에 관여했다. 하지만 그런 서점들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문사회과학 도서의 수요가 크게 감소한데다, 그나마 책을 구입해도 온라인서점과 도심의 대형서점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 있는 풀무질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표방하면서도 25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서울의 다른 서점에서 보기 어려운 지난 시절의 풍경이 이 서점에는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지하에 있는 서점으로 내려가려면 낡은 계단을 지나야 하는데 계단 벽에는 ‘맑시즘 2010’, ‘저항과 연대를 통한 새로운 글쓰기 교실’등 학술행사 등의 안내 전단이 붙어있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인권운동사랑방,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등 시민단체의 소식지와 환경잡지 작은것이아름답다, 어린이신문 여럿이함께 등이 놓여있다. 1980년대의 서점에 비하면 소식지의 종류가 많이 줄었지만 2010년의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이 서른엔 우리 어디에 있을까’ 노래가 낮게 깔리는 것이나, 한쪽 구석에 5, 6명이 너끈하게 앉을 수 있는 작은 공부방을 갖춰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서점의 특징이다.

그렇더라도 서점이 지하에 있다 보니 좀 답답하기는 하다. 천장에서 밝은 전등이 비추고 있지만 자연 채광이 되지 않고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지 않아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서점 주인 은종복(45)씨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한다. 1985년 문을 연 서점을 그는 1993년부터 맡아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서점은 원래 길 건너편 건물의 1, 2층에 있었다. 2개 층을 쓰기는 했지만 두 층 합쳐봤자 9평에 불과해 불편이 컸다. 장소가 협소해 책을 바닥에 쌓고 여기저기 자투리 공간에 처박아 두었다. 그랬더니 헌책방처럼 보였고, 책 정리도 안돼 주문을 받고도 책을 찾느라 적지 않게 고생했다. 게다가 월세도 조금씩 올랐다. 그래서 3년 전 이곳으로 옮긴 것인데, 비록 지하에 있기는 해도 면적이 35평이나 되고 여유 공간도 있어서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다.

은종복씨는 서점 인수 당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지역운동을 하면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풀무질 서점이 새 주인을 구한다는 말이 들렸고 가족과 상의한 끝에 인수를 결정했다. 다른 가족은 다 반대했지만 어머니께서 “너는 책을 좋아하는데다 언제까지 신문 배달만 할 수 없을 테니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며 밀어주었다. 서점 인수에 필요한 돈도 어머니가 마련해준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서점에는 1999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은 형과, 아버지까지 나와 일을 함께 한다.

사실 풀무질이 생길 때만해도 서울시내 대학 앞에는 한 두 곳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있었다. 이들 서점은 당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진보적 관점을 담은 책들을 비치, 학생들에게 제공하면서 그들의 생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동구권이 몰락하고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류의 책은 조금씩 관심을 잃어갔고 서점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대 앞의 그날이오면, 건국대 앞의 인서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이들 서점도 한 두 번 문 닫을 위기를 겪었다. 은종복씨가 서점을 인수할 당시도 이미 인문사회과학 도서에 대한 관심이 슬슬 지고 있을 때였으니 경제적 논리로 보자면 그가 썩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지금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좀 어려운 이론 학술지가 한달 만에 100부 정도 나가는 등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제법 팔렸다. 그런 도서를 중심으로 하루 70만~8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는데 마진도 30%나 됐다. 반면 지금은 전체 매출의 50% 정도를 사법시험, 공인회계사시험 등 국가고시 수험서가 차지한다. 대학교재의 비중은 30% 정도 되며 인문사회과학 도서는 15%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점으로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주문하는 고객들은 수험서나, 토플 토익 등 영어책 그리고 대학 교재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수험서 등은 마진이 1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이 판매하고도 그리 큰 이익을 얻기가 어렵다. 은종복씨가 “솔직히 말하면 이곳을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매출의 80% 정도를 수험서와 교재 판매를 통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라고 해도 모두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도서 구성에서 특별한 차별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굳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표방하는 이유는, 어쨌든 아직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더 많이 읽히고 판매하고 싶기 때문이다.

풀무질 혹은 인문사회과학 서점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동네 서점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성균관대 앞만 해도 동명, 논장 등 이름난 서점이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풀무질 하나만 남아 있다. 인근 대학로에 서점 하나가 더 있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은종복씨는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책보다 영상문화, 컴퓨터 등에 더 익숙한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극심한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시험에 매달리고 영어 공부에 몰두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신 은종복씨는 작은 서점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점에 자주 오는 사람들로 책 모임을 꾸렸다. 단골 고객 등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독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번 달에는 자연주의적 삶을 실천한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읽고 서점에 있는 공부방에서 토론하기로 했다. 작은 서점이기 때문에 이런 모임을 만들기가 더 쉽다고 그는 생각한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단골로 찾아오는 교수들과 가까워진 것도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얻은 행복이다. 게다가 이 서점이 옛 모습을 아직 많이 간직하고 있다며 추억에 젖어 찾아오는 성균관대 졸업생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작은 힘이 된다.

그는 서점 운영 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글 쓰기다. 아무래도 종일 책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 같다. 주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 뒤 서점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그 글들을 모아 올해 4월에는 라는 책을 냈다.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서점을 하면서 느낀 것,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그는 인권과 생태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인권운동사랑방 등 30여 단체에 후원금을 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후원금도 내기 시작했다.

은종복씨는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온 가족의 동의를 얻어 농사를 짓고 싶지만 그때까지는 이 서점을 잘 가꾸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벌이는 시원치 않아도,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서점 운영에서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17년 동안 이 서점을 이끌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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