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에는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비난과 의구심이 넘쳐 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19일자 1면 머리기사도 그 하나다. 한국이 사정거리 1,500㎞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이 천안함 사태를 구실로 금지구역에까지 범접하려 한다”고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 미사일 개발로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일부 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됐다는 한국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며 동북아 전체에 불안감과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한국 때리기
‘한국의 방종’ ‘무책임한 자세’ 등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한 것을 보면 작심하고 한국을 겨냥한 느낌이다. 한때 북한에 천안함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스스로 입증하라고 촉구하는가 하면 서해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했던 이 신문이 점점 한국을 표적 삼은 공격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차원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 순항미사일 개발 정보를 흘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당국과 우리 언론의 책임도 있다. 그런 무신경이 중국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튀는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중국 언론도 있다. 인민해방군 소장 신분인 주청후(朱成虎) 중국 국방대 교수와 네티즌과의 대화를 마련하고 20일자에 그 내용을 소개한 반관영 중국신문사의 경우다. 주 교수는 이 대화에서 동해와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한국이 던져놓은 올가미에 미국이 걸려든 결과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해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위해 한국이 훈련계획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미국을 ‘납치’하려 했다는 것이다.
25일부터 28일까지 동해에서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의 일정과 규모가 최종 결정되기까지 한미 국방당국이 보인 엇박자가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당초 서해에서 핵항모 조지 워싱톤호가 참가하는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된다고 발표했지만 미 국방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여러 번 부인했다. 연합해상훈련 실시 시기를 놓고도 양국은 완급의 입장 차를 드러냈다. 마치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미국이 보다 적극적인 한국에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던 게 사실이다.
어제 한미간 첫 외교ㆍ국방장관 합동회의인 ‘2+2 회의’ 등 최근 며칠 동안 양국이 보여준 최상의 협력 분위기는 미국이 한국의 올가미에 걸려든 모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핵 항모에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가 참가하는 동해 연합훈련을 비롯해 앞으로 3개월 가량 다양한 한미연합 훈련이 실시되는 것 역시 중국측의 올가미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압박하는 한미공조가 강력해질수록 중국 내에 한국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이 증폭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미중 갈등 줄이는 조정자 돼야
중국의 협력 없이 북핵 등 북한의 문제를 풀어나가기는 어렵다. 유엔안보리 등 국제무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묻고 압력을 가하려던 우리정부의 노력은 중국의 견제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어떤 종류의 대북 압박도 중국 쪽으로 뒷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성과가 제한적이다. 설사 한미가 주도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경우라도 중국의 개입과 협조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가 깊어질수록 한국의 입지가 힘들어진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두 강대 세력 사이에서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증대시키는 촉진자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숙명인 이유다. 그런데 한 쪽의 불신을 키우면서 다른 한 쪽에 의존도를 높이면 그런 역할은 불가능하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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