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가 돌아왔다. 아마조네스 안젤리나 졸리가 ‘솔트’로 귀환한다. ‘툼레이더’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등을 거치며 강인한 이미지를 구축해 온 졸리는 신작 ‘솔트’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인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할까. 영화는 졸리의 여전사 이미지를 소비하는데 지나치게 몰두한다. 졸리의 액션만으로도 흔쾌히 박수 칠 관객이 아니라면 99분의 상영시간이 다소 길게 느껴질 듯하다.
이야기의 출발은 흥미롭다. CIA 요원 솔트(안젤리나 졸리)는 막 자수한 러시아 간첩을 신문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곤경에 처한다. 옛 소련 시절 고도의 훈련을 받은 KGB 정예 요원이 CIA에 침투해 있고 그 당사자가 바로 솔트라고 러시아 간첩이 자백을 했기 때문. 게다가 그는 솔트가 곧 미국을 방문할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할 임무를 띠고 있다고 밝힌다. 동료들의 의혹의 눈초리는 자꾸 따가워지고 결국 솔트는 구금에 처해진다.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솔트는 남편의 신변 보호를 위해 CIA의 경계망을 빠져나가고, CIA는 솔트를 맹추격한다. 그리고 조금씩 솔트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드러난다.
한 첩보원이 어느 날 갑자기 동료들에게 쫓긴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료로 영화는 중반까지 내달린다. 날렵한 동작으로 달리는 트럭 지붕 위에서 유조차로 몸을 옮기는 졸리의 연기는 발바닥이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아찔하다. 졸리의 군더더기 없는 발차기와 손놀림, 사격 자세 등에서도 여전사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총상 입은 배를 생리대로 응급조치 하는 장면은 그저 예쁜 여배우가 아닌 액션스타 졸리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흥미로운 소재와 좋은 배우가 만났지만 화술은 빈약하다. 몇 번의 반전은 느닷없고 작위적이기까지 해 긴박함을 연출하지 못한다. 소련이 양성한 비밀 첩보원들이 미국사회 곳곳에 박혀 암약하고 있다는 등 냉전의 악몽에 호소하려는 노력조차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역부족이다. 비밀 첩보원들에 의해 세계가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착상은 조금 시대착오적이다. 졸리의 연기가 ‘묻지마 액션’으로 다가오는 게 무리도 아니다.
한국 관객이라면 영화 도입부에 시선이 집중될 듯하다. “이 간나 새끼야” “빨리 불라우”라는 대사를 반복하며 솔트를 취조하는 북한군의 모습이 서두를 장식한다. 솔트가 포로 교환을 통해 풀려날 때 그의 상관이 “김정일이 변덕을 부릴 수 있다”라고 내뱉는 대사도 예사롭게 들리진 않는다.
졸리는 이 영화를 위해 ‘원티드’의 속편 출연을 포기했다고 한다. 당초 톰 크루즈가 맡기로 했던 주인공은 크루즈가 하차하면서 성별이 바뀌어 졸리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엇갈린 선택 속에서 아마 크루즈가 더 환한 미소를 지을 듯하다. ‘패트리어트 게임’ ‘본 콜렉터’ 등의 필립 노이스 감독.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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