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조선의 학자 홍길주(1786~1841)는 근래 수십 년 사이에 고질병을 치료하였다거나 위중한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도리어 병이 없을 때 날마다 의원과 약물을 가까이 한 경우 칠팔십을 넘겨 건강을 누린 사람이 많다고 주장했다. 홍길주는 평소에 병이 없을 때 의원을 찾아가 자신의 타고난 내장기관이 어디가 약한지 또 어디가 튼튼한지 미리 알게 해두어 가끔씩 약물을 조제하여 부족한 데를 보충해야 병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병이 생긴 뒤에 비로소 약을 쓰면 아무리 훌륭한 의원일지라도 수고로움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홍길주가 ‘미리’를 강조한 이유는 단지 병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사회는 나날이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안으로는 조정에서 밖으로는 지방 고을에 이르기까지 군역의 혼란과 가중된 세금으로 수십 가지의 계책을 마련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홍길주는 만일 수십 년 전에 조정의 인사들이 오늘의 다급함을 대비하듯 미리 계획을 세웠더라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통탄하였다. 그리고 일갈하였다. 앞서 대비한다는 의미의 ‘미리 예(豫)’자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이라고 말이다. 사실 사람들은 장차 병에 걸릴까 걱정할 때나 혹 병 중에 조금 차도가 있게 되면 지금이라도 좋은 처방을 내어 이후를 예방해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금방 마음이 해이해져서 병들었을 때의 초조하고 다급함을 잊게 된다. 그리고 그럭저럭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덜컥 병이 도지거나 깊어지면 그제야 근심 걱정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 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병이 난 뒤에 약을 써본들 너무 늦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의학경전인 에는 ‘성인은 이미 발생한 병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병을 치유한다. 성인은 이미 일어난 혼란을 다스리지 않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혼란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발병 전의 조섭과 양생을 중시한 것이다. 이처럼 동양사회에서 최고의 ‘다스림(치ㆍ治)’이란 우려할 만한 사태를 예방하는 일이다. 무질서가 나타나기 전에 질서를 다잡는 것이요, 병이 들기 전에 몸을 조섭하는 일이다. 물론 아무리 준비를 잘한다 해도 늘 문제가 발생하고 질병이 엄습하기 마련이다. 이 때는 사후약방문이라도 이를 통해 잘 처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다스림이란 바로 자신의 덕성을 잘 다스려 부도덕한 모습, 부정(不正)한 사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사전 예방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극기복례이고 덕치이다. 반면, 아무리 극기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간의 욕심이 덕성을 훼손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데, 이 때 불가피하게 형벌과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법치이다. 덕치가 사전의 예방적 조치라면, 법치는 사후의 불가피한 수단이다. 유학자들이 법치보다 덕치를 우선한 것은 법치야말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건강으로부터 집안의 안녕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회사나 학교 일로부터 국가의 중차대한 정치ㆍ경제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의 근본을 다스려 미리 준비함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우리는 늘 어떤 일이 벌어지면 미리 대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곤 한다. ‘미리 준비하자’는 홍길주의 말이 아직도 절실한 이유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