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中企 기술·정보 공유로 '동반성장' 양날개 활짝
4월 일본의 유명 포털회사 NEC빅로브는 '모노콜레'(Monocolle)라는 웹 서비스를 내놓았다. 책, 음악, 동영상, 게임 등 어떤 제품이든 1,980엔짜리 리더기에 바코드만 읽히면 제품의 정보가 곧바로 웹 상에 저장이 되는 방식이다.
이전까지 제품 사진을 찍고 관련 정보를 입력해야 했던 수고를 덜어주는 장점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물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이용자가 어떤 제품을 많이 갖고 있는 지 등을 알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런데 NEC빅로브는 이 서비스를 혼자가 아닌 게임기구를 만드는 중소기업 S사와 손 잡고 개발했다. 단순히 중소기업의 제품과 기술을 대기업이 산 게 아니라 기획부터 제조ㆍ판매까지 전 과정을 함께 진행했다.
두 회사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9월 교토리서치파크(KRP)에서 열린 오픈이노베이션매칭(Open Innovation MatchingㆍOIMㆍ개방 혁신의 장) 행사. 일본 내 200여개 대ㆍ중소 기업이 모여 기술과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두 회사 기술진과 고위 임원들이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사업을 진행했던 것. 현재 두 회사는 또 다른 제품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를 진행했던 치카카네 사토시 KRP 성장기업지원부 매니저는 "최근 일본 재계의 화두는 오픈이노베이션"이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대기업과 기술은 있지만 성장의 계기가 필요한 중소기업이 손을 잡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은 자신의 회사가 보유한 기술과 정보를 주최 측이 만든 홈페이지에 올리면 관심 있는 대기업이 만남을 제안하고 OIM에서 구체적으로 사업 진행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일본 전역을 돌며 4차례 열린 행사에는 샤프, 히타치, 미쓰비시 등 주요 대기업을 포함해 272개 회사가 참여 했고 이를 통해 현재 30개 아이템이 사업화가 진행 중이다.
오카다 나오키 KRP 부장은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3~4년을 보고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술이 있어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대기업은 멀리 내다보고 사업 계획을 짤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좀 더 많은 기술을 현실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ㆍ중소기업이 동반자이기 때문에 '기술을 가로채지 않을까' '이익이 나면 소외시키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이 곳에선 중소기업도 걱정 없이 기술을 오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OIM을 주도하고 있는 KRP는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 회사라는 점도 눈에 띈다. 1987년 오사카 가스가 4억5,000만 엔을 출자해 만든 이 곳에는 250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시다 마코토 기업부 매니저는 "대학과 연구소, 중소기업, 교토시 정부, 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부서까지 한 데 모였다"며 "입주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비싼 실험 기자재를 포함해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각종 행정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닌텐도, 호리바제작소, 옴론 등 전통적으로 정보통신(IT), 바이오 등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곳으로 유명한 교토에서 KRP는 20년 가까이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중소기업의 기술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하테나, 마구마구 등 이 곳이 배출한 스타 기업만도 여럿 있다.
시다 씨는 "기술, 품질이 경쟁력이라는 진리를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좋은 기술을 만들자는 목표로 뭉칠 수 있다"며 "특히 기업들이 자주 만나 신뢰를 쌓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교토(일본)=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日 일동전공 나카지마 공장장 "반세기 납품 이어온 비결은 상호 신뢰"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지는 않습니다. 납품 단가를 내려야 하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그로 인해 하청업체가 입을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 할 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하죠."
일본 오사카의 금형 제조 중소기업 일동전공의 나카지마 시게루 공장장이 말한 일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뜻 밖이었다.
1957년 문을 연 일동전공은 현재 동경전력, 관서전력 등 일본 내 주요 전력회사에 송전 시설 부품(시장점유율 15% 안팎)을, 전기시설공사 회사에는 건물 내부 전기 시설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특히 주요 전력회사들과는 50년 가까이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는 게 나카지마씨의 설명. 그는 "오랫동안 거래를 이어 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쌓아 온 신뢰는 서로의 발전을 위해 좋은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동전공이 물건을 납품하는 대기업들은 4~5곳과 동시에 거래를 진행하고 품질이 떨어지면 거래를 중단한다. 나카지마씨는 "품질을 높이고 공정에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없을까 늘 고민한다"며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언제든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임에도 오사카 시내의 본사에 대학에서 기계설비, 기계공학을 전공한 10명으로 연구개발(R&D)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대기업은 제품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중소기업은 이를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거래가 끊기거나 회사 문을 닫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기에 대기업과 관계 유지에 신경을 쓰는 대신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게 나카지마씨의 설명. 그는 "이 같은 노력들은 결국 대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며 "대기업은 장기 거래 등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이런 노력을 보상해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사카(일본)=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대기업·中企지재권 침해방지 대안은…
대ㆍ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를 확립, 중소기업들의 협상력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의 지식재산권을 법적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들과 거래할 때 중소기업들의 지식재산권인 특허를 공유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많고,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협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이 거래조건으로 특허 공유를 요구할 경우 먼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의무화하는 것. 대기업에게 신고부터 하게 하면 아무래도 특허 공유 요구가 줄어들 것이란 게 업계 설명이다.
사업 제안서를 특정인에게 맡겨 보관토록 하는 방안도 기업호민관실을 통해 접수되고 있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사업 기획 아이디어를 제시할 경우, 프리젠테이션(공개설명회) 후 대기업이 이런 아이디어를 빼 내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사업 아이디어를 두고 협의하기 전에 비밀유지약정(NDAㆍNon Disclosure Agreement)을 맺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불공정 거래 예시제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호민관실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게서 불공정 피해를 당해도 거래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직접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불공정거래 사례를 유형별로 판정ㆍ공표함으로써, 비슷한 사례가 생겼을 때 판례로 삼는 '불공정 거래 예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청과 기업호민관실, 중소기업중앙회에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센터'를 설치해 무기명 접수를 받은 뒤 이를 실제로 접수된 사례와 동일하게 간주해 심사ㆍ조사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신고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이다.
한편 불공정거래 신고를 당한 원사업자가 납품기업들에 대해 보복하지 못하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도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납품기업들에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보복금지 선언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유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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