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운영하는 김영진(가명ㆍ43) 씨는 최근 800만원이 불입된 적금을 담보로 120만원을 대출 받았다가 2등급이었던 신용등급이 한번에 5등급으로 추락했다. 신용정보사에 항의하자 상담사는 “예금담보인 줄 몰랐다”면서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대출 정보는 모두 신용대출과 동일하게 통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이명진(가명ㆍ40) 씨는 이달 초 신용카드사의 사용명세서에 첨부된 광고를 보고 카드론 300만원을 썼다가 신용등급이 4등급에서 6등급으로 떨어졌다. 이씨는 “돈 빌려 쓰라는 광고를 보고 몇 주만 쓰다가 갚을 생각이었는데 신용등급이 두 계단이나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개인신용등급은 금융거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신용 1등급과 10등급의 대출금리는 두 자릿수 차이가 나고, 대출 자체의 성사가능성도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신용등급이 어떻게 산정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내가 왜 5등급인지 혹은 9등급인지, 등급이 왜 올라갔고 또 내려갔는지 알 길이 없다. 신용정보사들은 막연히 ‘연체를 자주 하면 떨어진다’ 정도로만 홍보하고 있지만, 휴면 카드를 해지하거나 예금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면서 등급산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엇갈린 모델
현재 국내에서 개인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곳은 ▦한국신용정보(한신정ㆍNICE) ▦한국신용정보평가(한신정평가ㆍKIS)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 세 곳. 각각 마이크레딧, 크레딧뱅크, 올크레딧이라는 신용정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각 금융회사와 은행연합회 등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대출, 신용카드 개설, 연체ㆍ조회정보 등을 받아 신용등급을 산정한다.
하지만 3개사가 각각 사용하는 정보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모델이 다르다 보니, 같은 사람인데도 각 기관이 매긴 등급이 크게는 4~5단계나 차이가 난다. 평가대상인 개인이나 정보 이용자인 금융기관 모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신정은 신용카드 장기 사용자에게 보유기간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은행으로부터 신용카드 사용액 정보는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카드가 쓰는 카드인지, 휴면카드인지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휴면카드를 정리했다가 신용점수가 깎이고 등급이 하락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신정은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가시스템을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KCB의 경우 신용등급이 롤러 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앞서 예로 든 김영진 씨의 경우 지난해 10월 7등급이었던 신용등급이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한 번도 연체 없이 잘 사용하자 2등급까지 올랐지만 예금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로 5등급으로 다시 강등됐다. 같은 기간 한신정과 한신평정보에서 매긴 김 씨의 신용등급은 큰 변화 없이 1등급씩 상승했다. 카드론 한번에 2등급이 떨어진 이명진씨도 KCB와 달리 한신정과 한신평정보에서는 약간의 점수만 하락했다.
정보의 차단
금융기관 등을 통해 자신의 대출한도를 조회하면,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단지 조회만으로 등급이 하락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용정보에 대한 ‘알 권리’조차 없다는 뜻이기 때문. 이에 KCB는 지난해 말부터 조회정보를 평가시스템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고, 최근 금융감독원도 “1년에 3회까지는 대출한도 조회사실을 평가시스템에 반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직도 KCB 이외 신용정보회사에선 연 4회 이상 조회 시 신용등급이나 점수 하락 요인으로 반영되고 있다.
현재 신용정보회사에서 자신의 신용등급을 조회하려면 유료 서비스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제윤경 에듀머니 이사는 “기업 신용평가사들은 회사채 발행 등으로 신용등급이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받고 신용을 평가하는 반면, 개인 신용평가사들은 대출 등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의 없이 신용등급을 매기고 정보 이용자인 금융기관과 평가 대상인 개인 모두에게 대가를 받는다”며 “최소한 자기 정보는 무료로 조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좀더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기준을 공개해야 개인들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용을 관리할 것”이라며 “감독기관의 세심한 지도ㆍ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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