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라는 괴물이 고용시장이라고 비켜갈 리 없다.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지난달 민간 부문 취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45만4,000명이나 늘었지만,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3%로 금융위기 한파가 거셌던 작년 6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실업률이 1.9%포인트 뛰어올랐다. 30대~60대 계층은 모두 실업자보다 취업자가 더 늘었지만, 청년층은 취업자 감소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중소기업 싫다는 젊은이들
고용 여건이 나아지는데도 청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까닭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단골로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인데, 젊은이들은 번듯한 대기업에만 가려고 하니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중소기업은 영역이 넓어 대기업보다 경험할 일들이 더 많고, 회사가 커가는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 예찬론을 여러 번 폈다. ‘도전 없이는 성공도 없다’는 공자님 말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기성세대도 많다. 요즘 젊은이들은 벤처 등 창업을 통해 기업을 일구려는 도전정신이 너무 희박하다는 나무람이다.
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 모임의 의견을 들어봤다. 결론적으로 중소기업에는 절대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차별 대우하고 중소기업 사원에게 ‘중소형 인간’의 낙인을 찍는 우리 사회가 취업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젊은 세대에 대한 기만입니다.”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가 공정한 게임의 룰이 작동하지 않는 ‘제한적 경쟁사회’라고 입을 모은다. 전체 고용의 88%를 떠맡고 있는 중소기업은 임금과 생산성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하다. 당연히 정부는 이들의 경쟁력을 키워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사상 최대 실적으로 현금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 지원에만 열심이다. 법인세 감면 및 임시투자세액공제의 80% 이상이 대기업에 돌아가는 ‘부자감세’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기업의 이익을 빼앗아가도 법의 칼날은 무디기만 하다. “지금은 여건이 열악해도 향후 나아질 것이라는 비전이 있다면 중소기업 취업을 마다할 리 없지요.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는 패자부활전이 허용되지 않아 첫 출발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공무원이든 대기업 정규직이든, 한 번 진입하면 기득권을 지키려 철옹성을 구축한다. 민간인이나 비정규직이 커리어를 쌓아 공직 사회나 정규직으로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중소기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저임금, 비정규직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다 대기업으로 옮길 수 있는 구조라면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겠어요?”
창업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뭐 하나 잘 되는 사업이 있으면 대기업이 가만 두질 않는다. 최근 막걸리가 인기를 끄니 재벌 기업까지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막걸리시장을 키워 온 영세 주류업체들은 언제 몰락할지 모른다. 과거에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규제하는 장치라도 있었지만, 이제 거대 자본이 음식점이나 동네슈퍼까지 장악하려 들어도 속수무책이다.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인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공정경쟁 환경 조성이 관건
청와대와 여당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진용을 새롭게 짰다. 직제 및 조직도 일부 개편해 노동부가 29년 만에 고용노동부로 명칭을 바꿨고, 청와대 사회복지수석이 고용복지수석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일자리 만들기에 ‘올인’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읽혀진다.
고용노동부는 첫 작품으로 다음 달 청년실업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관광 의료 등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따위의 식상한 레퍼토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고용의 10%밖에 담당하지 않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당장 뜯어고치고, 중소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공정경쟁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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