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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꿈꾸는 천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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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꿈꾸는 천사의 이야기

입력
2010.07.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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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뮤지션의 재즈 슈퍼 콘서트’를 보러 갔다. 재즈 공연으로는 드물게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이었다. 이 공연을 기획한 친구는 로비에서 손님들을 맞느라 바빴다. 키가 커서 언제나 찾기가 쉬웠다. 그가 발굴하고 키운 다섯 명의 뮤지션이 예술의 전당 콘서트 무대에 선다. 바로 2 주 전에 백건우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샤를 뒤투와가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청중들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곳이다.

2,000석이 넘는 객석이 가득 찼다. 민경인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로 공연이 시작됐다. 내게 음악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친구가 겪었던 분투와 노력, 좌절과 희망을 떠오르게 하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비 오는 날의 차 속에서 친구는 흥분해서 말했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때인데도,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친구는 흥분돼 있었다.

재즈 뮤지션들 위해 안간힘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바흐의 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전제덕과 계약할 즈음 친구의 전 직장 퇴직금은 거의 다 소진되고 있었다. 전제덕이 훌륭한 연주자인건 다 알았지만 아무도 선뜻 음반 계약은 못할 때였다. ‘한국에서도 리 오스카 같은 하모니카 솔로가 가능하단 걸 보여주겠어.’ 주변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가 했던 말이다.

재즈 가수 정말로가 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노래만 아니었다면 친구는 지금도 신문사를 잘 다니고 있을지 몰랐다. 그녀의 첫 음반에 있던 저 노래를 처음 같이 들을 때만해도 친구는 신문사 기자였다. 사내 노래패 공연에서는 큰 키로 맨 뒷줄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가까운 친구가 크게 다쳤을 때는 두 달 넘게 거의 매일 밤을 병원에서 지새웠다. 혼수상태인 친구의 대소변을 능숙하게 받아내던 친구의 모습은 키 큰 천사에 다름 아니었다. 다쳤던 친구는 깨어나서 지금도 기자 일을 하고 있고, 를 늘 듣던 친구는 2002년쯤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정말로’ 정말로의 2집 음반을 만들었다.

인터넷 문화의 확산으로 음반 시장의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하다고 말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딸이 둘 있는 40 대의 가장이, 안정된 신문사 기자가, 대중 가수도 아닌 재즈 가수의 음반을 내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건 상식이 아니었다. 친구는 아주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주변의 만류를 돌파하고 대학로 지인의 사무실 한 쪽에 책상을 갖다 놓고 음악 일을 시작했다. 천사라면 아주 무모한 천사였다.

개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음악계에서는 개미로 통하는 박주원이 인간의 신경 시스템에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속도로 기타 스트링을 두드리고 있었다. 친구가 가장 최근에 찾아낸 재능이었다. ‘사장님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재능을 표현할 통로를 만들어 줍니다.’ 언젠가 친구와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개미 씨가 말했었다. 그 통로를 만들기 위해 친구의 퇴직금이 들어갔고, 집의 한 부분을 은행이 소유하게 됐다. 자신의 승용차를 팔아 봉고차를 샀고, 로드 매니저도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뮤지션들을 싣고 다녔다.

재능 찾아내 표현 통로 마련

‘너무 파란 하늘일 때마다, 매일 그대 생각을 하죠’ 재즈 보컬리스트 차은주의 바닥 깊은 목소리가 콘서트 홀을 채우고 있었다. 친구가 작사를 시작한 건 제작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글을 다루는 신문기자의 이력이 정치도 사업도 아닌 곳에서 특이하게 적용된 경우다.

파란 하늘을 보며 그가 생각하는 그대는 누구일까? 천사와 같이 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아내일까? 이름의 이니셜로 회사 이름을 만든 딸들일까? 아니면 오십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좇고 있는 자신의 인생일까?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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