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백남준 역시 먹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빈털털이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월스트리트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있는 분야입니다. 그들에게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1932~2006)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73)씨가 백남준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은 회고록 (이순 발행)을 냈다. 그는 2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책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편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이날은 마침 백남준의 생일이었다.
“1972년 생일날, 남준은 일본의 형에게서 1만 달러를 받아서 뉴욕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 돈으로 맨해튼의 골동품 가게에서 표정이 일그러진 불상 하나를 사왔더군요. 가난한 살림에 치여 살던 저는 크게 화를 냈지만, 2년 후 그 불상은 남준의 대표작인 ‘TV 부처’가 되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천재구나, 이 사람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불평하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구보타씨는 “내가 백남준을 사랑한 것은 그가 천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1964년 5월 도쿄에서 열린 공연에서 백남준의 에너지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면서 “나 역시 예술가였기에 백남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후 뉴욕에서 플럭서스(1960~70년대 전위예술운동) 동료로 인연을 맺은 뒤 이내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1977년 결혼했다. 책에는 10여년간 연인으로 지내면서도 결혼만큼은 한사코 거부하던 백남준이 청혼을 하게 된 뒷이야기가 실려있다. 암에 걸린 구보타씨가 보험이 없어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자, 자신의 보험으로 치료비를 대겠다며 결혼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구보타씨도 뉴욕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그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계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표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도 백남준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백남준은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예견했습니다. 그는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를 망라한 폭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은 구보타씨가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1964년 처음 보고 ‘이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데서 시작, 2006년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백남준’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조각을 만드는 장면에서 끝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야곱의 사다리’ 등 백남준 작품들의 탄생 비화를 비롯해 백악관 노출 사건 등 여러 에피소드들도 등장한다.
구보타씨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우주처럼 심오했던 남자, 백남준과 함께 한 삶에 감사한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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