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대책마련이 난산을 거듭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을 살리려면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는 쪽과, 규제를 풀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크다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탓이다.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어 있고 거래도 실종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핵심 규제를 풀어야 할 만큼 정말로 심각한 상황인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업계나 주무부처(국토해양부)의 위기론과 달리,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 침체가 과대포장 되어 있다' '과거에 잔뜩 부풀어오른 거품이 빠지는 자연스런 과정이며 절대가격은 여전히 높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위해 ▦과연 지금이 DTI규제 완화에 나서야 할 시점인지 ▦규제를 완화할 경우 효과는 있는 것인지 ▦규제완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은 흡수 가능한 것인지를 짚어 봤다.
■ 시점은 적절한가
거래 침체·주택 경매 속출 불구 집값 여전히 높아
DTI규제를 완화할지 여부는, 과연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해 새 아파트 입주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반기까지 전국적에서 16만여가구의 신규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점까지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기존 주택거래의 물꼬는 터줘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 분양가와 주변 시세보다 가격이 떨어진 '깡통아파트'가 속출하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이 증가하는 현실은 주택 시장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법원 경매에 부쳐진 수도권 주거용 부동산은 3,232건(아파트 1,969건)으로, 올 들어 가장 많은 수치를 나타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시장상황 타개를 위해선 DTI 완화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DTI 완화 폭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시장에 미칠 영향이 달라지겠지만 일단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 물꼬를 터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집값이 그렇게 폭락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예컨대 강남3구로 대표되는 버블세븐을 비롯해 서울ㆍ수도권 대부분 지역은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곤 여전히 거품이 잔뜩 끼어있던 2006년 11월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집값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란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과거에 폭등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하락폭은 결코 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거품이 빠지는 자연스런 과정인 만큼 금융안전성을 위한 규제를 풀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최근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는 '신규아파트 미입주'에 대해서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입주를 시작했거나 시작 예정인 단지들은 거의 부동산시장 거품이 많았던 2007~2008년에 집중 분양된 것들로, 대부분 분양가가 높았고 또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계약한 물량이 많았다는 것. 이른바 '상투'를 잡은 계약자들인데, 이런 개인적인 주택구입 결정에 따른 피해를 과연 정부가 금융규제까지 완화하면서 구제해줘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지금 거래가 안 되는 것은 은행이 대출을 안 해줘서가 아니라 집값에 아직 거품이 껴있고 또 언제 더 내릴 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아직 대부분 지역에 거품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만큼, 시장이 원하는 만큼 가격이 내려가면 거래는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 효과 있을까
서울 DTI 평균 23%… 대출 확대→거래 활성화 미지수
만약 DTI를 포함한 금융규제를 완화할 경우, 과연 거래를 활성화시켜 부동산시장을 살릴 수는 있는 것 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DTI 규제를 대폭 푼다고 해도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완화론자들의 예상대로라면 'DTI 규제 완화 → 주택담보대출 확대 → 주택수요증가'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실제 대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선 40(강남3구)~60%의 DTI 규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6월말 현재 실제 주택담보대출자의 평균 DTI는 서울 23%, 경기는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도의 절반 밖에는 대출을 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도를 더 늘려준다고 해봐야, 추가대출을 통한 주택 구매가 활성화되길 기대하긴 무리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DTI를 풀면 거래가 활성화될 거라는 심리적 효과는 다소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지금도 대출 상한선을 다 채우지 않는데 한도 늘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돈이 없어서 집을 '못 사는 것'이라면야 대출을 늘려주면 집 구매가 늘어나겠지만, 집값 하락 우려 때문에 집을 '안 사는 것'이라면 대출 확대가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특히 절대적 수준으로 봤을 때도 현재 40~60%인 DTI 상한선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연봉 3,000만원의 샐러리맨이 DTI 50%로 융자를 받았다면, 매년 1,500만원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쓴다는 의미. 50% DTI는 원리금 상환부담 면에서 엄청난 수준인 셈이다.
완화론자들은 "DTI 규제 완화를 통해 실수요자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연봉 절반 이상을 대출금 상환에 사용하면서 버텨낼 수 있는 서민들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금의 DTI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확대해 준다고 해도 실수요 목적의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DTI 등 금융규제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한 '가속페달'이 아니라, 부동산 경기과열을 차단하기 위한 '브레이크' 역할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애초 금융규제는 거래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 허석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DTI 규제를 완화하면 결국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가속페달 역할은 제대로 못하는 반면, 나중에 집값 상승기에 브레이크조차 작동하지 못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영태 기자
■ 후폭풍 흡수 가능한가
가계빚 증가·투기광풍 재연 우려… 보금자리주택 확대 정책과도 상충
DTI 규제완화를 찬성하는 쪽은 주로 주택업계와 주무당국인 국토해양부. 하지만 금융 및 거시경제안정을 담당하는 쪽(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은 한결같이 반대한다. DTI규제가 풀릴 경우 그 부작용과 역기능은 어느 정도일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규모는 가처분소득의 1.43배.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금융위기와중에도 가계부채구조조정을 겪지 않은, 즉 빚을 계속 늘려온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도 "장기적으로 보면 가계부채문제가 한국경제에 가장 큰 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때문에 어떤 경우든 빚을 늘리는 정책은 타당하지 않으며, 더구나 부동산경기 부양과 같은 목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가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가계부채 월 증가액이 2조원대에서 3조원대로 늘어난 상황인데 DTI를 풀면 어쨌든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며 "거시경제의 안정이란 관점으로 보면 DTI는 손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수요자에 대해서만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지금은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것보다 주택 가격이 떨어져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시경제론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DTI완화가 한국경제와 금융의 안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론 투기유발과 시장과열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임상수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후의 수단(DTI)마저 풀게 되면 시장은 정부가 부동산을 부양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며 "이 경우 투기광풍이 다시 불 수도 있고, 버블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정책목표의 상충도 문제다. 현재 강남과 수도권일대의 집값하락 및 거래실종은 '보금자리주택효과'가 크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 정부가 요지에 반값 아파트를 계속 공급하는데, 그럼으로써 집값하락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누가 아파트를 사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이유도 결국은 주변시세안정을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금융규제를 완화한다면, 정부 스스로 한 손으론 집값을 떨어뜨리는 정책(보금자리주택)을 펴고, 다른 한 손으론 집값을 끌어올리는 정책(DTI완화)을 쓰는 넌센스가 벌어지는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면서 DTI를 완화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경제안정을 해칠 수 있는 DTI를 손대기 보다는 차라리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조절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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