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 할당으로 1조 또 증자… 고위험 투자 손실 농민에 떠넘기기
지난 7일 신규 입주가 한창인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단지. 주요 시중은행 모두 주택담보대출 판촉전을 벌였으나, 대부분 물량을 농협이 싹쓸이 했다. 이유는 농협이 '다른 은행보다 무조건 낮은 금리'를 내걸었기 때문.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이 시중은행보다 최대 0.5%포인트 낮은 금리를 제시했다"며 "손해를 보는 식으로 대출하는 농협을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일 농림수산식품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건전성이 크게 나빠진 농협중앙회가 지난달 전국 1,700여개 단위농협에서 1조원의 자본금을 수혈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농협중앙회는 증자가 이뤄지던 6월 중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대폭 늘려, 농업인이 어렵게 조달한 자금을 도시민에게 저리로 빌려줬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해 6월 1조원을 증자한 뒤 1년만에 농업인에게 1조원을 추가로 요구한 것에 대해 농협중앙회는'금융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재무구조의 추가 악화 가능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농협은 금융부문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해 5억5,700만달러(약 6,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PF 대출이 새로운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이 주도한 대규모 PF사업장 가운데 경기도 한류월드(구 한류우드), 파주운정지구 복합단지, 인천 도화지구 복합단지 등은 사업 진행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들 사업장 대부분이 부동산 경기침체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중단이 우려되는 등 부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농협의 위험한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 3월말 기준 농협의 PF 대출규모는 8조원을 넘는데, 이는 자산규모가 농협보다 훨씬 큰 국민은행(9조9,000억원)과 우리은행(9조8,000억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금융권에서 "PF대출 부실이 본격화하면 농협이 또 다시 농민에게 손을 벌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농협이'당장 돈이 되면 무조건 손을 댄다'는 행태를 또다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1조원 증자로 숨을 돌린 탓인지는 몰라도, 농협이 6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출혈경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협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다른 은행보다 무조건 낮게 준다'는 무차별적 마케팅으로 6월 한달 간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6,400억원이나 늘렸다. 이는 같은 기간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은행의 전체 대출 증가액(6,200억원)보다 많은 것이다.
농협의 공격적 행보가 계속되면서 금융당국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과당 경쟁으로 불완전 판매가 일어날 수 있고, 은행 건전성 악화 우려도 있는 만큼 은행권 전체를 대상으로 1차 경고를 해 둔 상태"라며 "만약 문제가 발견된다면 (해당 금융사를 상대로) 검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민에게서 1조원 증자를 받아 놓고 그 돈으로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벌인 셈"이라며 "농민을 위한다는 곳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자회사 21곳에 '낙하산'… 방만경영 빈축도
농협중앙회 산하 자회사는 모두 21개. 일부는 이익을 내서 회원조합 배당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방만한 경영으로 그 반대의 상황에 있는 자회사도 허다하다.
지난해 농협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와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실에 따르면 2006년부터 본격 사업을 시작한 농협목우촌의 경우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6년 18억원이던 적자는 2007년 28억원, 2008년 78억원(누적 기준)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2008년 이 회사 임원의 평균 연봉은 1억3,800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3,000만원 더 높은 것이다. 경영은 악화했어도 임원은 더 많은 월급을 챙긴 셈이다.
높은 업무추진비 사용실적도 농협중앙회 산하 자회사의 방만한 경영실태를 잘 보여준다. 농약과 살충제 등을 제조하는 자회사인 영일케미컬의 경우 2008년 순이익이 10억2,900만원이었는데, 그 해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돈이 순익과 맞먹는 10억2,800만원에 달했다.
농협경제연구소와 NH한삼인도 각각 순이익의 47.3%와 26.3%에 해당하는 금액을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다. 황 의원은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방만한 운영"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자회사의 부실 운영은 기형적인 자회사의 인력구조에서 나온다는 지적이다. 임원 대부분이 전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농협 출신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한나라당 김성수 의원실에 따르면 21개 자회사 임원 39명의 80%인 31명이 농협중앙회, 조합장, 농협중앙회 자회사 등 농협 출신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는 8명에 그쳤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자회사 임원직에 농협 출신이 대거 진출한 것은 그들의 전문성보다는 중앙회의 인사 적체 해소 목적이 짙다"고 지적했다.
임직원 대부분이 농협 출신이다 보니 그 아래 직원들도 중앙회에서 파견된 경우가 많다. 지난해 6월 기준 21개 자회사 임직원 4,724명 중 농협중앙회 파견직이 709명으로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특히 자회사 경영평가에서 꼴찌를 했던 농협목우촌의 경우 농협중앙회에서 파견 직원 비율이 58.6%로 월등히 높았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눈밖에 나면 지원 물거품" 단위조합은 봉
"눈밖에 났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달라는 대로 내줄 수밖에 없어요."
가뜩이나 쪼들리는 경영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조합 유보금 가운데 수억원을 출자 명목으로 농협중앙회에 송금한 A지역 조합 관계자는 "같은 배를 탔다고는 하지만, 불편한 부분이 참 많은 동지"라고 농협중앙회를 평가했다.
지난해 증자 명목으로 농민들로부터 1조원을 거둬들인 농협중앙회가 지난달 또다시 1조원 증자를 강행하면서 전국 단위농협에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각 지역본부에 따르면 5월 1조원 증자를 방침을 전격적으로 확정한 뒤, 1,700여개 단위조합을 독려해 한달 만에 경인지역(32개 조합) 1,800억원, 대구지역본부(20개 조합) 243억원 등 당초 목표한 1조원의 출자금을 모두 걷었다.
증자 명목은 ▦대외 경쟁력 강화 ▦안정적 경영기반 확충. 그러나 일선 농민 사이에서는 '중앙회의 방만경영에 따른 손실을 농민이 보전해 줬다', '지역 조합의 존재감은 중앙회가 아쉬울 때만 나타난다', '시중은행 같으면 임원진이 물갈이된 뒤 증자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경기지역 한 조합의 관계자는 "작년 실적을 바탕으로 조합별로 목표 납입액을 정한 공문이 중앙회 지역본부에서 내려왔다"며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 당초 계획했던 조합원 지원사업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납입금을 채워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출자금은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자기자본비율 산정에 불리해지는 불이익이 예상됐지만, 중앙회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정책자금 배정 등에서 불이익이 예상돼 응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구지역의 한 조합 관계자도 "중앙회 사업에 비협조적인 조합은 농축산경영자금, 농기계구입자금, 농촌주택자금 등 각종 정책자금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이 바닥의 정설"이라며 "지역조합은 중앙회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중앙회는 배당이율이 3.85%이기 때문에 손해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중앙회와 같은 신용등급(AAA) 회사채 수익률이 4.5%에 달하는 만큼 출자를 할수록 단위조합은 손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자금 부족을 겪는 조합은 지역조합 지원기금을 통해 무이자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중앙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기금관리위원회를 거쳐야 하므로 대부분 조합이 중앙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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