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공룡이 3D 입체영상으로 살아나 책을 보는 아이 쪽으로 걸어온다. 종이 위로 튀어나온 공룡끼리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싸우고, 익룡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화면에는 책을 보는 아이와 아이의 방, 펼쳐 놓은 페이지도 보인다. 실제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합된, 이른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다.
영국 출판사 칼튼 북스가 6월에 선보인 세계 최초의 증강현실 책 (Dinosaurs Alive)가 한국에 상륙했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 삼성당이 번역 출간했다. 책에 박힌, 공룡 눈알처럼 생긴 표시를 컴퓨터의 웹캠에 비추면 증강현실이 펼쳐진다. 키보드를 조작하면 공룡이 알에서 깨어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삼성당은 칼튼북스의 또다른 증강현실 책 (Fairyland Magic)를 이달 중 출간할 예정이다. 웹캠에 꽃그림 카드를 비추면 책 속 요정이 그 꽃 위에 나타나 움직인다.
증강현실 기술은 실제현실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상현실을 겹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3차원 공간에서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가상현실에 현실감을 더하는 이 신기한 기술은 스마트폰이 보급됨에 따라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건물을 향해 스마트폰을 내밀기만 하면 그 건물과 주변 지역 정보가 실제 풍경 위로 둥둥 뜨는 응용 프로그램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애용하고 있다.
모바일 시대 문화콘텐츠 제작의 핵심기술로서, 증강현실 기술은 출판에도 널리 쓰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 문화콘텐츠연구소가 증강현실을 적용한 디지로그 책 개발에 나서 지난해 샘플북 과 를 선보였다. 아직 상용화는 안 됐다. 어린이책 출판사 예림당은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증강현실 책으로 만들 것을 검토 중이다.
증강현실이 가상현실에 현실감을 더하듯, 증강현실 책이 독서 체험을 증강할 수 있을까. 출판계는 증강현실 책의 등장이 책과 출판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한혜원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증강현실 책은 책의 연장이나 보조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로 봐야 한다”며 “따라서 증강현실 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 자연 교과서를 증강현실 책으로 만드는 시나리오 작업을 해본 그는, “아이들은 증강현실 책을 컴퓨터게임처럼 느끼더라”고 전하면서, “공룡 등 실제로 볼 수 없는 것, 반현실 또는 비현실적인 것을 증강하는 것이 학습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국내 대표적 출판사인 민음사의 장은수 사장도 “증강현실 책은 책에 오락적 요소를 강화한, 비디오게임에 가까운 새로운 장르”라고 본다.
배주영 살림출판사 주간이 증강현실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독서 체험의 변화다. 증강현실 책은 종이책과 증강현실을 오가느라 독서 흐름이 중간중간 끊어진다는 점에서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는 전통적 독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는 “그게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중요한 것은 독서의 본질과 개념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읽기 방식이 변하면 책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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