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1832-1898)의 를 읽어본 독자라면 첫머리에 등장하는 하얀 토끼를 기억할 것이다.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든 이 토끼는 연방 “큰일 났군, 아무래도 약속 시간에 늦겠어” “아이참, 늦어서 어쩌지?” 하고 조바심을 친다.
기계식 시계는 유럽에서 1300년 께 발명됐다. 처음 나왔을 때는 너무 비싸서 일반인이 구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1650년 이후 값이 저렴해지면서 유럽의 모든 가정에 비치되다시피 했다. 가정마다 비치된 시계는 신기한 기계 장치의 표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계 시계산업의 흥망
중ㆍ장년 연배의 독자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 있는 기계식 시계를 뜯어보다가 망가뜨린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의 꾸중이 뒤따르지만, 이런 경험들은 기계 구조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계기가 되곤 했다. 실제로 18세기에 계몽사상이 유포되면서 이른바 기계론적 세계관이 확산됐을 때 유럽인은 물리적 우주를 기계식 시계에 견주어 이해하기도 했다.
시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시간은 신축적이었다.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했다. 특히 농촌에서는 계절에 따라 업무 시간의 길이가 달랐다. 그야말로‘배꼽시계’였다. 시계는 밤낮의 구분 없이 규칙적인 시간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계는 전에 없이 정확하게 사람들의 작업 활동을 규제했다. 사람들은 ‘정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야 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시간 엄수에 대한 강조는 효율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긴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의 하얀 토끼는 시간 약속에 집착하던 19세기 서유럽인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계산업 하면 스위스를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사실 1968년에 스위스는 전 세계 손목시계 시장에서 매출의 65%와 이익의 80∼90%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스위스의 시장 점유율과 순이익은 모두 20%로 떨어졌다. 1968년 당시 일본은 손목시계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전무했지만 10년 뒤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기계식 시계보다 1,000배나 정밀한 쿼츠(수정진동자)시계 때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획기적인 발명품인 쿼츠 시계의 발명자가 스위스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발명자가 1968년에 새로운 시계를 소개했을 때 스위스의 주요 시계 제조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계산업을 주무르던 기업인들은 그 아이디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특허권으로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일마저 귀찮게 여겼다. 이 새로운 발명품에 관심을 보인 두 회사가 있었다. 일본의 세이코와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였다. 그 후 수만 명의 스위스 시계기술자들이 해고당하는 신세가 됐다.
스와치 그룹의 성공 교훈
스위스 시계산업의 구세주로 불리는 니컬러스 하이예크가 등장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경영 컨설턴트였던 그는 스위스 시계산업이 어려움에 처했던 1984년 스위스 대형 시계회사인 SMH의 주식 51%를 사들이면서 시계산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경영권을 맡은 후 SMH는 저렴한 플라스틱 줄과 쿼츠 방식, 대량생산 체계를 도입했고 회사 이름도 스와치 그룹으로 바꿨다. 그의 도전은 큰 성공을 거둬 스와치 시계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고 스위스 시계산업은 다시 황금기를 맞았다. 그가 지난 달 28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향년 82세.
역전과 재역전의 롤러 코스터를 탔던 스위스 시계산업이다. 어디 시계뿐이랴. 변화를 읽지 못하면 국가건 기업이건 미래는 없다. 역사의 엄중한 교훈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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