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충무로 최고의 흥행술사 강우석 감독은 “‘다크 나이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를 보며 커다란 벽과 부딪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는 영영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인가’라는 패배감도 느꼈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자꾸 시계를 보았다. 너무 재미있다 보니 아쉬워서 그랬다.” 그 즈음 강 감독이 사석에서 곧잘 풀어놓던 말이다.
‘다크 나이트’는 전대미문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과 악이 명쾌한 이야기 구조에 화려한 볼거리를 치장하는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히스 레저의 광기 어린 조커 연기도 화제였지만, 상호보완적 존재로서의 선과 악에 대한 낯선 정의는 관객들의 뇌리를 쉬 떠나지 않았다. 심도 깊은 이야기와 막대한 물량의 절묘한 결합이 아마 강 감독이 느낀 벽의 실체일 것이다.
강 감독의 신작 ‘이끼’가 개봉 첫 주 113만 7,000명을 모았다. 163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영시간과 청소년관람불가라는 장애 요소를 감안하면 큰 흥행을 예감케 하는 출발이다. 대박의 분기점은 이번 주말이다.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잠재적인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가 됐고, 관객들을 유혹할 새 개봉작들도 극장을 찾는다.
이번 주 개봉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인셉션’이다. 얄궂게도 놀란 감독의 신작이다. 2년 전 강 감독에게 영화적 충격을 안겨준 장본인이 ‘이끼’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된 셈이다. ‘인셉션’이 한국 심의에 발목을 잡히지 않아 지난주 미국과 동시 개봉했다면 ‘이끼’와의 정면대결도 가능했을 것이다. 호사가들은 박수 치며 즐거워하고, 두 영화 당사자들은 침이 더욱 바싹 말랐을 일이다.
강 감독은 극일(克日)을 연상케 할 만큼 ‘할리우드 넘어서기’를 강조해 왔다. 할리우드 영화와의 맞대결을 불사하며 ‘우리 영화’의 부흥을 주창해온 그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면 ‘인셉션’과의 대결은 흥미진진 그 자체다. ‘인셉션’은 지난 주 북미 시장에서 6,04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눈이 번쩍 뜨일 성적은 아니지만 강자다운 산뜻한 출발이다.
강 감독은 흥행 길목에서 ‘인셉션’과 맞닥뜨린 것에 대해 “묘하게도 그렇게 됐네”라며 여운을 남겼다. 자신감과 경계심이 교차하는 그의 말에서 이번 주 극장가에서 벌어질 흥행 대전의 치열함이 감지된다. 과연 강 감독은 자신에게 무력감을 던져준 놀란 감독의 신작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주는 올 여름 시장 최대의 승부처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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