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편과 오랜 기간 동거를 하지 않은 외국 국적의 여성이라도 아내와 며느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혼인생활의 실체가 인정돼 귀화 대상이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9부(부장 박병대)는 남편 생전에 동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화 신청이 거부된 중국 국적의 동포 이모(47ㆍ여)씨가 "귀화불허 신청을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원심을 뒤집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2001년 중국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 이듬해 혼인신고를 하고 남편을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목수인 남편의 수입이 불규칙해 이씨는 결혼 한 달 만에 홀로 상경한 뒤 식당 등에서 일을 하며 따로 살아야 했다. 2005년 10월 남편이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씨는 그 해 11월과 지난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법무부에 간이귀화 신청을 했지만 "동거를 하지 않아 정상적 혼인관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없다"며 불허처분을 받았다. 이에 이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고, 1심은 법무부와 같은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남편과 한 달 동안만 동거했으며 남편이 사망하기까지 3년 8개월간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일반적 혼인생활과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서울에서 지낸 이씨가 틈틈이 남편이 있는 제천을 찾았고, 남편의 임종도 지키는 등 서로 부부로 인식했다"며 "궁극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한 만큼 귀화 요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명절에 시댁을 찾고 친척이 두루 모인 남편 동생의 결혼식에 참여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씨 남편의 가족도 이씨를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손철우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혼인의 실체 유무를 판단할 때 동거가 핵심 사안이긴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시부모 봉양과 임종 의식 등 한국 특유의 공동체 문화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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