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가 추진하려는 이민단속법을 놓고 미 정치권이 시끄럽다. 불법체류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불심검문을 강화한다는 게 법의 골자인데, 법무부가 “연방정부의 이민정책 권한을 주정부가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특정 정책에서 갈등을 빚는 것은 미국 정치에서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이 분명한 사안에 주정부가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 정치적 폭발력 때문에 연방정부도 꺼리는 이민단속 문제라는 점이 파장을 키운다.
양날의 칼, 불법이민단속
이민문제를 놓고 번진 공방은 오바마 행정부 아래 연방정부와 주정부, 행정부와 사법부의 정치적 관계를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요 개혁 정책인 이민문제가 워싱턴 의사당을 벗어나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는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애리조나주가 법적 논란을 무릅쓰고 강력한 이민단속법을 들고 나온 이유는 한가지, 주민이 원한다는 것이다. 멕시코와 맞닿은 애리조나는 쏟아져 들어오는 불법체류자들 때문에 마약, 밀수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 주민 불만은 커지는데, 연방정부는 무대책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는 게 주정부의 논리이다. 애리조나 주민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절반 이상이 주정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관할권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11월 중간선거에 닿아 있다. 히스패닉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 히스패닉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불법체류자 문제를 방치했다가는 중간선거에서 어떤 역풍을 맞을 지 모른다. 히스패닉은 지난 대선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 준 민주당 텃밭이다. 이민 개혁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연방정부와 불법체류자 유입이 주민들의 현실적 문제가 된 주정부의 충돌은 오바마 개혁의 추동력을 떨어뜨리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정치적 논란 키우는 대법원
사법부, 특히 대법원과의 관계도 지난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은 역대 대법원 중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적 독립이 대법원 존립의 근간이지만, 최근 판결은 대부분 정치적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기업의 정치광고를 무제한 허용한 것이나 개인의 총기소유는 기본권이라며 시카고시의 조례를 무효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로버츠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이 5대4 한 표 차이로 판결을 내린 것이 전체의 22%에 달한다. 역대 대법원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 때문에 최종 심판자가 돼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논란을 키운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번 소송이 대법원까지 간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의 지적이다. 더욱이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개혁에 따른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어서 보수세력이 잡고 있는 대법원의 정치화는 오바마 개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마이너 스포츠로 통하는 축구가 지난 월드컵 때 전에 없는 인기를 누렸다. 축구라면 미치는 히스패닉 인구가 늘어난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인구 변화가 미국 정치에도 큰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
황유석 워싱턴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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