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산 젓갈 일본산 곰장어… 수입산 매장에 들어온 듯
18일 오후 6시께 울산 원예농협이 운영하는 굴화하나로마트(울주군 굴화리). 5월 전국 하나로마트 가운데 최대 규모(연면적 2만7,428㎡ㆍ지하 1층 지상 5층)로 개장한 탓인지 손님들이 꽤 붐볐다. 지상 1층은 식품매장, 2층은 서점ㆍ의류ㆍ잡화매장, 3층은 문화센터 병원 세탁소 미용실 주차장 등이 들어서 화려하고 압도적인 미국의 쇼핑몰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1층 수산물코너에 가 보니 우리 농ㆍ어민을 위한 유통 센터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수입산 천지였다. 노르웨이산 연어, 중국산 새우살, 러시아산 명태알, 일본산 곰장어와 가리비 등이 수산물 가판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밥코너에도 페루산 오징어와 바닷장어, 칠레산 훈제연어가 초밥 위에 버젓이 놓여 있었다.
젓갈류와 절임류 코너는 아예 중국 시장을 옮겨 온 듯했다. 조개젓 낙지젓 꼴두기젓 등 젓갈류는 물론, 우리네 정겨운 이름이 깃든 고들빼기무침 고춧잎 된장깻잎 간장고추지까지 모조리 중국산이었다.
곡류 채소 과일 등을 파는 농산품코너에는 다행히 우리 농산물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판매대 크기는 1층 식품매장 전체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옆에 있던 한 고객은 “우리 농산품코너는 구색 갖추기용”이라며 혀를 찼다.
전남 목포시 농수산물유통센터에서는 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광굴비로 유명한 이곳에서 추석 설 등 명절 기간 중국산굴비가 판매되고 있는 것. 바다를 끼고 있는 이 센터에서 판매되는 수산물 식자재 150여개 품목 중 대부분이 중국 베트남 러시아 칠레 등 외국산이다. 특히 이곳은 시내 500여개 음식점과 일부 초중고에도 냉동 외국산 수산물을 공급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 지역 유통업자 김모(46)씨는 “농협 브랜드를 달고 장사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ㆍ어민과 이를 파는 소상인을 다 죽이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산 판매점이 돼 버린 곳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76개 하나로마트가 영업 중인 강원의 경우 춘천시 원주시 강릉시 등 도시를 제외한 소규모 군에서는 사실상 농협이 유통시장을 거의 100%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하나로마트에서 동남아산 과일로 만든 통조림 등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바로 옆 동해안 일대에서 생산된 수산물조차 외면한 채 외국산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농협은 “수산물과 농ㆍ축산물 가공 식품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국산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농협은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바나나 오렌지 등 수입산이 주를 이루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농협의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소비자는 “외국산 수산물과 농ㆍ축산물 가공 식품이 소비자에게 꼭 필요하다면 굳이 농협이 취급하지 않아도 다른 유통 업체가 담당할 수 있다”며 “농협은 농민이 주인이니 하나로마트 등도 토착 먹거리 판매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 상인도 “농협이 외국산을 팔아 얻는 이익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농협이 얻을 수 있는 정당한 수익이 아니다”며 “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농민과 국민의 외면을 받아 농협의 존립 기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 농민 자녀 장학금은 '짠손'
'188억원 대 22억원.'
'농민을 위하는 조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각계의 혁신 요구를 거부해 온 농협중앙회(농협)가 고액 연봉을 받는 직원에게 대학생 자녀 학자금 명목으로 지급한 규모가 농업인 가정의 대학생에 지원된 장학금보다 8.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민주당 김우남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 농협이 거액 연봉과는 별도로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 명목으로 직원에게 지급한 규모는 188억원(3,192명)에 달했다. 반면, 농협 스스로 '농협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농업인 가정의 대학생 900명에게 지원된 규모는 22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외 유학 중인 농업인 가정 대학생은 아예 대상에서 배제하면서도, 농협 직원의 유학생 자녀에게는 연간 1,2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는 점. 김 의원은 "최근 3년간 조기 유학 혹은 외국 대학에 입학한 농협 임직원의 고교생(127명)및 대학생(229명) 자녀에게 지원된 것만 10억9,4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농협은 '학자금은 실비보상 형식의 지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치원부터 대학교 학자금까지 거의 전액을 지원하는 것은,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과도한 지원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실제로 기업은행의 경우 2003년 이후 학자금 대상을 기존 '유치원~대학'에서 '유치원~고교'로 축소했으며, 국내 최대의 A공기업은 유학 자금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국내 대학 등록금도 75%까지만 지원하고 있다. B공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 호응하기 위해 학자금 대상을 고교까지 축소했으며, 액수가 큰 대학 등록금은 회사가 대출 형식으로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의 이기적 행태가 알려지면서, 일선 현장에서 관련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대학생 딸을 둔 지방의 한 조합원은 "농협의 대출금리가 너무 높아 시중은행에서 등록금을 빌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협이 일선 조합에 매년 장학금을 배분하는데, 그 액수가 1,000만원 안팎에 불과해 사실상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누구를 위한 농협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 사이에서도 농협의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농협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학자금 문제를 제기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국감 때는 시정을 약속했으나, 이후 1년이 가까이 단 한 건의 후속 조치 결과 보고서도 올라온 게 없다"며 "농협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농약 값 내리면 각오해" 몽니
“올해도 농약 값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겠어….”
16일 오후 충북 청원군 A농협 자재창고 앞에서 농약 대금 영수증을 빤히 들여다보던 이모(50)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해마다 오르는 농약 값만 보면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더 화 나는 일이 있다. 농협에서 공급하는 농약의 가격이 시중의 일반 농약상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농협은 농약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며 “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A농협 직원은 “농협과 일반 농약상의 농약 가격이 서로 비슷하고 오히려 농협 공급가가 더 비싼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농협중앙회에서 (농약 값을) 일괄적으로 정해 내려오기 때문에 단위농협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농약 유통시장은 농협과 일반 농약상이 각각 50%씩 양분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 경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농민들의 궁금증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풀어 줬다. 원인은 농협에 있었다. 공정거래위에 따르면 농협은 농약 제조 업체들과 일괄구매 계약을 하면서 제조 업체들을 압박해 일반 농약상이 농협보다 싸게 팔 경우 제조 업체가 책임을 지는 조건을 달았다. 실제로 농협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런 계약 조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조 업체들로부터 12억6,000만원을 강제 징수했고, 2006년에는 2,600만원 상당의 농약을 일방적으로 반품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농약을 비싸게 팔아 독점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공정거래위는 “거대 수요처라는 지위를 이용해 제조 업체에 불이익을 주고 가격경쟁을 억제해 결국 농민들에게 폐해를 끼친 행위”라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는 농협의 이 같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4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농협 충북지역본부 관계자는 “농협과 일반 농약상은 주요 취급 품목이 달라 가격 비교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청원=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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