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 입어도 호소할 데 없어… 학교문제 다루는 통합창구 절실"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1315세대가 사회 문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학교 현장에선 통제불능의 지경에 이르렀고, 어느 새 가출 청소년의 주류를 이들이 차지하게 됐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 성폭행, 절도, 심지어는 살인 등 끔찍한 범행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다.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운 ‘B(Bomb)세대’1315. 그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려면, 그래서 학교와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3일부터 4회에 걸쳐 1315세대의 문제를 다뤄온 한국일보는 마지막으로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 좌담을 통해 그 해법을 모색해보았다.
좌담에는 신순갑(46)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 의 저자 김영화(57) 서울 서래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학부모 박상만(52)씨가 참석했다.
김영화= 한국일보의 기획을 보면서 ‘이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만 10년 넘게 지도해오면서 또래 아이들의 폭력성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터질 문제라고 생각했다.
박상만=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완전히 무너진 듯해서 개탄스럽다. 한국일보 기획은 피해를 당해도 어디 한 군데 호소할 데가 없는 현실, 인성교육의 부재 등을 잘 짚어준 듯하다.
신순갑= 과거의 전통적 가정이 핵가족으로 대표되는 현대가정으로 전환하면서 가정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970, 80년대에 비해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는 현상과 해법에 대해 좀더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법 없는 학교, 교칙 부활해야
신= 학교마다 학칙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입학 후 학칙에 대해 교육하는 학교는 국내에 단 한 군데도 없다. 등교할 때 교사가 ‘치마 끝 단은 무릎 선 위로 올라가지 않게’, ‘머리카락은 귀를 덮지 않게’ 등을 지적하는 게 전부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모든 학교에서는 200여 쪽 분량의 교칙을 알려주고, 어기면 교칙에 의거해 엄격하게 처벌한다.
김= 학교에서 사고를 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초등학생이 많다. 부모의 힘을 빌려, 또는 핑계를 잘 대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그런 의미에서 교칙의 부활과 엄정한 집행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박= 최근 학교폭력 문제로 초등학교 두 곳을 가봤는데 한 학교는 교사가 태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관심했고, 다른 곳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이를 평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칙 확립은 꼭 필요하다.
합리적 체벌도 필요하다
박= 요즘 아이들 버릇이 너무 없다. 제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도 담임교사를 ‘담탱이’‘걔’라고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서 꾸짖은 적이 있다. 과거 밥상머리 교육을 담당하던 가정이 붕괴했으면 학교에서 체벌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 얼마 전까지도 이틀이 멀다 하고 학생 때리지 말라는 공문이 쏟아졌다. 교사가 체벌하면 바로 인터넷에 동영상이 떠서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 교사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10%의 학생 때문에 나머지 90%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데도 교사가 어찌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교사의 통제력 회복이 시급하다.
신= 체벌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교사는 체벌을 안 하고, 누구는 폭행 수준의 체벌을 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 체벌도구를 표준화하고, 기준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폭행을 했을 때는 종아리 몇 대’, ‘물건을 훔쳤을 때는 손바닥 몇 대’ 등으로 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독일도 체벌이 있다. 규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교장에게 동의를 얻고 이뤄진다.
통합 교육 민원센터 만들어라
신= 서울시는 다산콜, 보건복지부도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 비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교육에 대해서는 정작 콜센터가 없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대한 민원서비스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이웃에 학교폭력 피해로 경찰서에 간 학부모가 있었는데 아동 폭력 피해자를 위해 설치했다는 원스톱지원센터는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의 모든 문제에 대해 해법을 알려줄 수 있는 일원화한 창구가 절실하다.
김= 일원화된 창구를 통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관계자가 각종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종합해 교육행정에 반영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교육청마다 폭력중재센터 한 곳이라도
박= 학교폭력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을 받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만약 전학을 간다고 해도 인터넷을 통해 전 학교 학생들이 ‘거기 누가 전학 갔는데, 혼 좀 내줘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전학을 가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다. 피해자가 滑舡?저지른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한 행태다.
김=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절차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교육 일선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피해, 가해를 떠나 ‘왜 우리 아이를 주눅들게 하느냐’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게 돼 교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신= 해법은 폭력중재센터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교사가 나설 필요가 없다. 학교폭력 전문요원이 현장에 나가 피해자와 가해자, 학부모, 교사 등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중재를 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잘못을 깨닫고, 피해자는 혹시 자신의 잘못은 없었는지 되돌이켜 보면서 화해에 이르게 된다. 전학을 가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지난 4년간 폭력중재센터를 운영해왔는데 일부만 혜택을 보고 있다. 학교폭력이 일반화한 지금 폭력중재센터를 국가적인 시스템으로 정착시켜 최소한 시ㆍ군ㆍ구 교육청별로 한 곳씩 운영해야 한다.
저연령화 맞춰 인성교육 실시해야
신= 한국일보에서 지적한 것처럼 청소년 범죄의 저연령화는 큰 문제다. 15년 전만 해도 학교폭력이 제일 심한 연령층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내려갔다. 2008년에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책임이 없는 촉법(觸法)소년의 나이를 12~14세에서 10~13세로 낮췄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인성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사회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해야 한다. 가출 청소년 문제만 봐도 ‘오죽하면 가출을 했겠니’라는 동정심으로 보기 전에 가출이 책임 있는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또 욕설 폭력 절도 등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런 행위는 범죄이며 이를 용인하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정부의 근시안적 태도도 문제, 상담교사 도입해야
신= 여러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봤지만 근본적으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확고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책은 거의 일회성이다. 교과부는 대통령 지시로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부서를 새로 만들었는데 각 부서에서 한 명씩 차출해서 만든 조직이다. 그나마 내년에 없어질지, 올해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3무(無) 정책 중 하나가 ‘학교폭력 무’다. 그런데 고작 나온 대책이 폐쇄회로(CC)TV 설치 정도에 머물고 있다. 아이들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때 학교안전법이 만들어졌다.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안전점검설문조사를 했고, 안전도가 낮은 학교에는 지원을 강화했다. 미국에서는 상담사들이 학교당 한 명씩 상주하고, 총기사고에 대비해 안전요원이나 경찰을 배치했다. 일본은 2005년 4,700억원을 투입, 학교 상담사 제도를 도입했고, 1,600억원을 들여 학부모 상담사도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다.
김= 인성교육이 없어서 아이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 학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성교육이다. 다만, 성적과 큰 상관이 없으니 등한시하고 있는 듯한데 학교폭력, 성폭력 예방, 올바른 인터넷 문화 정착 등 현실적인 주제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박= 학생이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담장이 없는 학교에 괴한이 들어가 아이를 납치ㆍ성폭행하는 등 사건이 벌어져야 반짝 대책을 내놓는 현실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대책, 보여주기 위한 대책은 필요 없다. 학교 건물을 꾸미고, 컴퓨터 한 대 더 설치하는 것보다 시급한 게 안전대책이다. 정부는 제발 뚜렷한 철학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정리=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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