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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동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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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동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

입력
2010.07.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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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길이가 6,300㎞에 달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창장(長江). 이 강 이름을 광둥어로 읽으면 ‘청콩’이 된다. 홍콩 최대 부호이자 동아시아 최대 갑부, 포브스 기준 세계 14번째 부자인 리카싱(李嘉誠)이 자신의 기업 이름을 ‘청콩실업’으로 지은 것은 모든 지류를 수용하는 큰 강과 같은 기업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고교 중퇴 후 자수성가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40년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으나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뜨자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5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화학제품 공장에 취직했다. 이 때 익힌 기술과 공장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22세의 젊은 나이에 청콩실업이라는 화학제품 제조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생화와 거의 비슷한 조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연구, 아시아에서 조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회사로 키웠다.

그러나 청콩실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부동산 투자였다.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에 영향을 받은 1967년 봉기로 홍콩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토지와 집값은 급락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정치적 혼란이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저가에 부동산을 매입했고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청콩실업은 지속적으로 부동산 투자ㆍ개발사업을 벌여 1972년 홍콩 증시에 1번 기업으로 상장하게 된다.

리카싱의 부는 1979년 영국계 항만 물류기업인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다. 허치슨의 전신인 허치슨 인터내셔널이 경영난을 겪자 대주주였던 홍콩은행은 추가 지분을 인수하고 1978년 왐포아독과 합병했다. 리카싱은 이듬해 홍콩은행으로부터 허치슨 왐포아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식민국가인 영국계 자본의 대기업을 식민지의 화교기업인이 처음으로 인수한 사실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리카싱은 인수 후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우량기업으로 바꿨다. 현재 허치슨 왐포아는 세계 컨테이너항 업계 점유율 13%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다른 재벌기업과 비슷하게 업종을 가리지 않는 ‘문어발’식 성장을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늘고 있는 의약품, 화장품 소매 체인인 ‘왓슨’도 왐포아 계열이다.

아시아 갑부 중 유일한 자선가

앤드루 카네기 이후 오랫동안 갑부들의 검약과 기부가 미덕이 돼 온 미국과 달리, 아시아의 갑부들은 본인과 가족들은 사치스럽게 살면서도 자선사업이나 기부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리카싱은 아시아 갑부로선 드물게 검소하게 살 뿐 아니라 자선사업에도 열정을 보이고 거액을 흔쾌히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뿔테 안경을 쓴 소탈한 이미지의 그는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며 값싼 시계를 차고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홍콩 사람들이 리카싱을 단순한 갑부로 여기지 않고 ‘초인’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여태까지 미화 14억달러에 해당하는 재산을 기부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관둬야 했지만 항상 책을 읽으며 독학해 온 그는 대부분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 기부했다. 특히 1981년 고향에 설립한 산토우대학에 쏟는 열정은 대단해서, 매년 운영자금의 70%를 대고 있으며 대학 운영위원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다.

결핵으로 숨진 아버지 때문인지 의학이나 약학 분야에 대한 기부도 많다. 이 분야에서 좋은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라면 홍콩이나 중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아시아 갑부들의 또 하나 특징은 자녀들 때문에 구설에 오르는 일이 많다는 점. 리카싱도 마찬가지다. 그는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장남인 빅터는 여든이 넘은 아버지 대신 그룹의 실질적 대표를 맡고 있다. 반면 둘째 리처드는 일찍부터 장남을 총애하는 아버지 곁을 떠나 혼자 힘으로 스타TV를 설립해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인터넷, 정보통신 기업 PCCW를 설립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6년 PCCW를 두고 아버지와 지분경쟁까지 하는 등 불화가 노출되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리처드는 최근 명품 매니아로 알려진 유명 여배우 이사벨라 롱과 교제해 왔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혼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룽이 아들을 낳자 조부인 리카싱은 손자의 이름도 지어주고 경호원, 보모, 영양사 등 10명을 둘 정도로 돈을 아낌없이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룽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도 홍콩을 떠들썩하게 했다. 연예계 생활을 접은 룽은 결국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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