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대표를 축으로 한 한나라당 새 지도부의 앞길이 흐릿하다. 판에 박은 듯 구태를 답습한 전당대회가 적잖은 실망을 안긴 위에 출범 이후 새 지도부의 매끄럽지 못한 언행이 실망을 더 얹었다.
우선 전당대회 표 대결에서 진 홍준표 최고위원의 볼멘 태도가 빚은 어색한 분위기가 집권여당의 모습과는 동떨어진다. 아무리 물고 뜯는 표 싸움을 했더라도 패자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게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통하는 기초적 행동원리다. 이마저 잊은 듯한 여당 지도부의 모습은 심각하다기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취임 이후 짧은 기간에 안 대표가 보인 자세다. 그는 대표 취임과 동시에 ‘박근혜 총리론’을 꺼내 들었다. 당내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는 비주류를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는 안팎의 주문을 전혀 소화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부터 꾸준히 비주류를 배려했더라면 몰라도, 앞서 세 번씩이나 불쑥 튀어나왔다가 잦아든 ‘박근혜 총리론’ 그대로다. 의원 개인의 ‘희망사항’ 피력이라도 현실정치 감각이 의심스러울 만하다.
그는 또 개헌 논의에 대해서 “올해 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개헌 논의 활성화를 국민과 야당에 제의하는 것이야 여당 대표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한동안 무성했던 개헌 논의가 다른 정치 쟁점에 파묻혀 국민 관심에서 멀어진 상황을 직시한 결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중하게’를 주문하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현재의 정치쟁점과의 관련성을 우선 살펴보겠다고 유보적 태도를 밝힌 데서 드러나듯 개헌이 지금 특별히 서둘러야 하거나 서두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연내 개헌’에 집착하는 듯한 자세가 너무 성급해 보인다.
이 두 발언이 안 대표의 착각에서 비롯한 게 아니길 바란다. 지금은 집권여당 대표가 권력의 2인자로 행세하던 시절이 아니다. 더욱이 여당에는 안 대표가 몸을 낮춰야 할 원로나 실력자가 숱하다. 그가 스스로 다짐한 ‘낮은 곳으로’의 진정성도 당내에서 먼저 가려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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