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지음
창비 발행ㆍ380쪽ㆍ1만3,800원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교회> 등의 책을 통해 한국 사법부와 교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비판한 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인권을 말한다. 교회> 불멸의> 헌법의>
그는 "역사도, 외국어도, 사랑도, 인권도 모두 영화에서 배웠다"는 영화광이다. <불편해도 괜찮아> 는 80여 편의 국내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인용해 유쾌하게 풀어낸 인권 이야기다. '~했습니다' '~입니다' 식의 경어체로 얌전하게 썼지만, 주장은 논리적이고 비판은 날카롭다. 글은 촌철살인의 유머 덕분에 통통 튄다. 불편해도>
그가 말하는 인권은 고담준론이나 투쟁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문제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혹은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들이 받는 차별과 배제, 억압을 무심하게 넘겨버리다간 그게 부메랑이 되어 내 문제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정말 괜찮냐"는 질문이다. 저자는 무딘 감각을 찔러서 인권 감수성을 자극하려 한다. 또다른 의미는 동성애자,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등 불편한 시선을 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옹호다. 그들을 존중하고 인정하자는 말이다.
책은 9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 청소년 인권, 동성애자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장애인 인권,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 차별 문제, 국가 권력에 의한 대량 학살을 다룬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날아라 펭귄' 이야기로 청소년 인권 문제를 짚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로 장애인 인권을 다루는 식으로 풀어간다. '오아시스'에 대해서는 장애인과 전과자에 대한 편견과 배제를 보여준 사회성 짙은 고발 영화라고 평가하면서도, 남녀 주인공을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림으로써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포레스트 검프'는
지적장애를 지닌 주인공의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탄광촌 소년이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탄광 노동자인 빌리의 아버지다.
이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영국, 산업 합리화를 명분으로 탄광을 폐쇄하고 노조를 탄압한 보수당 정권 하 노동자들의 삶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로 이어진다.
이 책은 재미있다. 저자는 개인적 체험을 덧붙여 독자의 공감지수를 높인다. 청소년 인권을 다룬 제1장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오는 '지랄 총량의 법칙'도 그 중 하나. 어느날 갑자기 "엄마 아빠 같은 찌질이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엇나가기 시작한 중학생 딸 때문에 고민하는 저자에게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 그 충고에 따라 우리 애도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을 바꿨더니 마음이 편해지더란다. 내 뜻대로 강요하지 말고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이런 정신은 비단 부모-자식 관계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적용돼야 할 덕목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 세상 누구도 소수자가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관용한단 말인가." 참 맞는 말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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