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리딩 지음ㆍ김지현 옮김
비채 발행ㆍ511쪽ㆍ1만3,000원
영국 출신의 소설가 마리오 리딩이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로, 지금까지 37개 국에 판권이 팔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프랑스 신비주의 철학자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의 4행시 예언서 연구자로도 잘 알려진 리딩은 자신의 전공을 십분 발휘, 사라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를 손에 넣으려는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책에 실린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4행시 100편 당 1세기씩 모두 10세기를 예언하는 4행시 1,000편을 남겼는데 현재 942편만 남아 있다. 또 그의 유언장에는 장녀에게 상자 2개를 물려주면서 “딸 외에 누구도 상자의 내용물을 봐서는 안된다”고 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사라진 4행시 58편 중 52편을 일부러 숨긴 뒤 그 장소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6편의 시를 딸에게 물려줬으며, 그 단서들은 이후 그의 뜻대로 유럽 각처의 검은 성모상 밑에 새겨졌다는 작가의 상상력에서부터 이 소설은 출발한다.
사라진 예언시를 찾는 이들은 두 무리다. 한 쪽은 노스트라다무스 전문 논픽션 작가인 주인공 사비르와 그의 집시 친구인 욜라와 알렉시. 다른 쪽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잔혹한 킬러 에이커 베일. 그의 배후엔 오랜 세월 유럽 사회에서 사악한 막후 권력 노릇을 해온 비밀결사 코퍼스 말레피쿠스가 있다. 소설은 돈 욕심에 예언시를 찾으러 나섰다가 쳇바퀴에 올라탄 다람쥐 신세가 돼버린 사비르 일행과, 예언을 손에 넣어 비밀결사의 500년 숙원을 이루려는 살인마 베일의 추격전을 시종 긴박하게 그린다. 장면 전환이 빠른 영화 시나리오처럼 짤막짤막한 150여개의 장으로 구성된 형식이 이야기의 속도감을 더한다.
프랑스 마누슈 집시 부족의 풍속에 대한 작가의 면밀한 취재도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소설의 유머는 대부분 미국계 백인인 사비르가 마누슈 부족에 편입되면서 빚어지는 문화적 충돌에서 비롯한다. 집시를 으레 비상식적이고 괴팍한 무리로 취급하는 구미 소설이나 영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그들의 종교 의식, 인간관계, 성 모럴 등을 심층적으로 파악해 적재적소에 활용, 소설은 흥미 본위의 대중소설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등장인물들이 카발라, 애너그램, 거울문자 등 유럽의 전통 암호 방식을 동원해 노스트라다무스의 4행시를 차례차례 해독하며 목표에 근접해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지적인 재미를 준다. 도드라진 반전이 없어 결말이 다소 심심하긴 하지만, 이만한 분량의 소설을 시종 억지스럽지 않게 끌어가는 작가의 능력에서 영미 장르문학의 전통과 저력이 새삼 느껴진다.
마리오 리딩은 ‘노스트라다무스 3부작’을 목표로 의 속편을 집필 중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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